'우리 선생님은 늘은(늙은)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숙제를 너무 많이 내주셔서 싫다"
학교를 퇴임하기 전, 남편이 담임으로 있는 반 아이가 쓴 일기다. 아직 맞춤법이 미숙해서 '늙은'이란 단어를 '늘은'으로 썼지만 아이의 눈에 비친 나이 든 선생님에게는 웃픈 이야기다.
새 학기가 되면 학부모들은 어떤 선생님이 내 아이의 담임을 맡게 될까? 관심을 갖게 된다. 이제 갓 교사로 발령받은 선생님, 그것도 젊은 여 선생님이 담임을 맡게 되면 학부모들은 대부분 반가워한다. 하지만 남자 선생님, 특히 은퇴를 앞둔 남자선생님은 고객만족도가 가장 낮은 교사이다.
교직에서의 마지막으로 맡은 1학년 아이들이 유난히 더 사랑스럽다는 남편과 달리 순진한 아이들 눈에는 그저 늘은 (늙은)선생님으로 보였을 뿐이다.
젊음, 그 싱싱한 에너지는 멀리서 바라만 봐도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오랜 세월 쌓은 경험과 연륜은 젊음 앞에서 무력해진다. 학교에서 뿐 아니라 어느 집단에서도 나이 든 사람들은 환영받지 못하고 행여 회식자리 같은 모임에서는 눈치껏 빠져 주기를 바란다.
은퇴는 사회생활의 종착점도 되지만 노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막연하게 여겼던 그날이 다가왔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상실감을 느낀다. 그것은 단지 직장과의 단절 때문이 아니라 젊음과 멀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다. 케이크에 커다란 초 일곱 개를 꽂고 시댁 식구들과 함께 조촐한 파티를 가졌다. 얼마 전 막내 시동생이 정년퇴임을 하여 시댁의 남편 형제들은 모두 은퇴자가 되었다.
세월이 무색하다. 다섯 형제의 장남에게 처음 시집왔을 때, 네 명의 시동생들은 푸른 나무들 같았다. 집안에 엄마가 아닌 젊은 형수가 돌아다니는 걸 신기하게 바라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모두 머리가 흰 할아버지가 되어 형님의 생일상에 둘러앉았다.
모두 은퇴 후의 삶을 이야기하였다.
부부 교사였던 넷째 시동생은 "할 일이 있는 한 영원히 늙지 않는다"라며 일과 젊음을 부각했다.
시동생은 자신이 퇴직 후에 해야 할 일을 오래전부터 준비했는데 서울 근교에 밭을 장만하고 주말이면 부부가 농부가 되어 농사짓는 일을 한다. 어느 해 여름, 손수 지은 농막에 초대되어 갔을 때 건강하게 자란 작물들을 보며 놀랍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이제 그곳에 자신이 직접 집을 짓겠다고 했다.
중장비 자격증을 따고, 목수 일을 배우고..., 많은 일을 계획 중인 넷째 시동생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서는 아직도 건장한 청년의 기운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막내 시동생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탁구를 하고 있는데 선수로 출전하고 싶은 포부를 말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매일 전쟁과도 같은 삶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직장생활을 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하루만 단잠을 푹 잘 수 있다면 나를 닮은 로봇이 하나만 더 있다면,
은퇴 후의 삶은 이 모든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시기다. 여유 있는 시간과 공간에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할 수가 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주어진 보상이다.
남편은 은퇴기념으로 다녀온 여행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여행계획도 얼핏 비쳤다.
일본 열도를 남에서 북까지 걸어 보고 싶고 필리핀의 작은 섬에서 원주민처럼 살아보고 싶기도 하고, 북극의 오로라를 바라보고 싶다고 한다.
남편의 칠순 생일, 어제까지는 중년으로 봐줬지만 칠십 세는 이제 노년이다.
"우리 남편이 늘었(늙었)어요, 나는 늘은 남편이 좋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 주어서 고맙고 건강하게 곁에 있어주어서 좋다. 무엇보다도 앞으로의 계획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
원탁의 생일상을 준비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둥그런 식탁은 이야기를 분리시키지 않고 모두를 참여하게 한다. 젊은 조카들은 나이 많은 작은 아빠의 전원생활 꿈을 경청하고 퇴임 후 자치회관의 탁구 선수가 되어 하루를 바쁘게 보낸다는 막내 삼촌을 응원한다. 우리 부부의 여행 실수담은 모두에게 웃음을 선물했다. 화기애애했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을 말하라면 나는 이제 백 가지도 넘게 말할 수 있다. 그중 가장 좋은 것은 마음이 편안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