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환타지아

비밀의 정원

by 연희동 김작가

올 해는 추석이 이전보다 이르다. 달력엔 9월 중순에 빨간 숫자 세 개가 나란히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열대야로 잠을 설쳤는데 하루 사이에 새벽에 홑이불을 끌어당기게 되었다.

요즘처럼 미세먼지도 없이 맑고 쾌청한 날엔 온종일 옥상 위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단독 주택이지만 마당이 넓지 않은 까닭에 나는 우리 집 옥상을 정원으로 꾸며 놓았다. 하루 종일 햇빛을 풍부하게 받는 곳이어서 그런지 나무도 꽃도 잘 자라고 있다. 오늘같이 맑은 날에는 빨랫대를 이곳으로 옮겨놓고 새하얗게 삶은 빨래들을 널어두기도 하였다.


오늘은 유난히 하늘이 푸르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듯 천천히 시간을 음미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곳에서 책도 읽고 글 도쓰고 커피도 마신다


며칠 전에 한 작가의 브런치에서 자신의 친정 엄마를 언급한 글을 읽었다. 그 글을 읽으며 우리 부모님이 생각났다. 환갑을 못 넘기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안 계신 집에서 어머니는 10년을 홀로 사시다가 일흔을 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우리 어머니가 살아 계셨더라면 아마 그 작가님의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일 것이다. 그래선지 아직도 엄마와 함께 지내며 아웅다웅 사는 모습이 부러웠다

우리 어머니는 생전에 우리 집에 간간히 다니러 오셨어도 서울이란 곳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를 모시고 노량진 수산시장을 갔을 때 그때서야 눈이 함박만큼 커지며

''서울이 참 좋다야, 없는 것이 없구나, '' 하시며 좋아하셨다.

이렇게 하늘이 푸르른 날 하얀 빨래가 뽀드득 말라가는 옥상 위에서 눈 아래로 펼쳐진 서울의 집들을 한눈으로 바라보면 우리 어머니는 그때서야 '' 우리 딸네 집이 참 좋구나'' 하셨을 것이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불면 왠지 마음 한구석이 슬프고 쓸쓸했다. 소위 가을을 타는 것이다. 어린 게 뭘 안다고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조금 청승을 떨었던 거 같다.


나이가 든 지금도 여전히 가을을 타는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괜스레 누군가 그립고 지나간 세월이 덧없으며 흘러가는 날들이 아까워진다. 나는 시원한 옥상에서 묵은 사진을 정리하기로 했다.

앨범에 차곡차곡 정리하고도 남아도는 사진들을 박스 안에 담아 두었었다.

오래된 흑백사진과 컬러사진. 사진관에서 찍은 명암 사진들이 뒤엉켜 있다.


컴퓨터 안에 들어있는 사진도 용량이 차고 넘치는데 누렇게 바랜 옛날 사진을 누가 봐줄 것인가 이참에 모두 태워버릴 요량이었다.


그냥 태워 버리고 말 걸 어쩌자고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춰보게 되었는지...,


나도 저렇게 젊은 시절이 있었구나, 옴마야 이 사진이 여기 있었네. 이번 달 동창 모임 때는 이 친구하고 찍은 사진을 가지고 나가야겠군.., 어느 것 하나 버리고 싶은 사진이 없었다.

그렇게 추억 속의 그림들을 바라보다가 언뜻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우리 어머니 사진이었다.


참 묘하다. 사진을 보면서 나는 잘 쓴 한편의 수필을 읽는 느낌을 받았다.

정장을 입고 사진관에서 근엄하게 찍은 사진들은 재미가 없었다. 온 가족들이 무더기로 서 있는 결혼식 사진도 별로 내 눈길을 끌지 못했다.

내 눈길을 끈 사진들은 하나같이 사진을 찾을 때 못 나왔다고 투정 부린 사진. 누군가 내가 사진 찍는 걸 알아채지 못했을 때 찍은 사진들이 더 재미있고 잘 찍은 사진처럼 보였다.


수필도 그렇게 써야 할 것 만 같았다. 잘 쓰려고 억지를 부리기보다. 잔잔하면서도 읽은 뒤에 여운이 남는 이야기가 좋은 글이 될 것 같다.


어머니는 친정집 옥상을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 아래에서 사진을 찍는 줄 모르고 찍힌 사진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음전하기로 소문난 우리 어머니가 속바지를 내놓고 사진을 찍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이 그렇게 좋았다. 지금이라도''어머니''하고 부르면 대답해 주실 것만 같은 사진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추석날에는 유난히 어머니가 보고 싶다. 종갓집의 장손 며느리가 되어 시댁 식구들 뒤치다꺼리를 하고 나면 명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지나간다.

수고했다는 공치사를 남기고 시댁 식구들이 모두 떠난 뒤 그제야 명절이 지나갔음을 느낀다.


나는 혼자서 옥상 위로 올라간다. 하늘에는 둥실 보름달이 떠 있었다. 달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오늘도 애썼구나 어쩌겠냐 참고 살아야지''라고 토닥이다가 이내

''네가 실향민이냐 어쩌면 그렇게 명절에 친정 한 번을 못 온다냐''하고 서운해하기도 하였다.

옥상은 그리움과 만나는 비밀의 장소이기도 했다.


오늘 나는 어머니 사진을 보다가 목이 메었다.

가을이 가져다준 센치멘탈도 아니고 청승도 아닌 외갓집에 놀러 온 외손녀 때문이었다.


내가 들고 있는 사진을 보고 아이가 물었다

''할머니 그 사진 속 사람은 누구예요?''

그러고 보니 우리 어머니는 내 딸아이, 즉 당신의 외손녀가 저 아이만 했을 무렵에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엄마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이가 대뜸 사진을 향해''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벌써 30 넌 전에 안녕하지 못하게 된 외증조할머니에게 안녕하냐고 묻는다. 사진 속의 증조할머니도 처음 보는 이 아이가 궁금할 것이다.

''어머니 외손녀 **가 낳은 딸이에요''


소개를 하려다가 그만 목이 메었다.


저만했던 아이가 자라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의 세월을 기다리지 못하고 너무나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가 연민스러웠다. 앞으로 나는 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볼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몫도 함께 들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를 보고 놀랐는지 아이가 슬그머니 옥상 아래로 내려간다.


오늘 날씨가 이토록 맑은 것은 곧 불어닥칠 태풍 때문인 것 같다. 태풍 전야라는 말처럼 온 동네가 고요하다. 이 곳에 올라오면 내 마음은 언제나 고요했다.

널어둔 빨래가 갑자기 심하게 펄럭인다. 태풍'링링' 이가 가까이 왔나 보다. 이번 바람이 추석을 망쳐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보다는 나의 비밀의 화원이 다치지 않고 무사하게 지나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옥상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