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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Sep 16. 2023

핸드폰 독립

핸드폰을 안 하려고 애플워치를 산 사람이 있다? 바로 나다. 보통은 더 스마트한 디지털 라이프를 위해 워치를 쓰는 것 같다. 패션용으로 쓰는 사람도 있다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나는 다이얼이 작고 스트랩이 얇은 스타일이 좋다.) 나는 딱 한 가지 이유, 핸드폰 좀 작작 봤으면 해서 샀다.


심신 독립을 하고 싶다. 심신 독립을 하려면 경제적 능력이 필요하다. 경제적 능력을 갖추려면 능력이 필요하다. 능력을 갖추려면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을 하려면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핸드폰은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이 괴물! 하기는 미안한 게 덕도 보고 있다. 유튜브로 오디오북도 듣고 번뜩 떠오른 생각도 메모하고 사진도 찍는다. 내가 주체적으로 핸드폰을 활용하는 건 좋다. 문제없다. 하지만 핸드폰에 휘둘리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더 많다. 문제 있다. 이 괴물! 내 시간!




할 일은 태산인데 시간이 없단 말을 달고 사는데 핸드폰을 하는 시간은 많다. 부끄럽다. 의식적으로 자제해서 거의 안 하는 날도 있지만 대개 두 시간에서 많게는 네 시간도 하는 것 같다. 더러 고삐 풀린 날도 있다. 홀로 카페를 하다 보니 정신줄 놓고 보다 보면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리고 있다. 온종일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다고 해도 내 어깨를 흔들 사람은 없다. 문득 의식이 돌아온다. 스크롤을 멈추고 생각한다. 대체 뭘 보고 싶은 거야?


핸드폰 좀 보면서 쉬는 게 어때서? 할 수도 있다. 뇌 과학적 관점에서 그것은 휴식이 아닙니다, 할 것도 없이 기분이 안 좋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어떤 일을 하기 전이 아니라 하고 나서의 기분을 믿으라는 말이 떠오른다. 핸드폰을 실컷 하고 나면 기분이 좋은가? 삼십 분 정도 인터넷 산책을 하고 돌아올 수 있다면 괜찮다. 인터넷 부랑자가 되는 게 문제다. 정보의 홍수에 떠내려 간다.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내가 핸드폰을 만진 이유를 생각해 봤다. 첫째, 시간을 보려고 했다. 문제는 시간을 확인한 뒤 무심결에 인스타나 네이버를 누른다는 것이다. 둘째,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통화 후에 괜히 앱을 눌러본다. 셋째, 핸드폰이 눈에 보여서 무심코 만졌다가 인스타 돋보기와 네이버 뉴스라는 개미지옥에 빠진다.




나는 핸드폰과 거리 두기를 하기로 했다. 핸드폰을 의식하고 염두에 두는 것만으로도 워킹 메모리가 돌아간다고 한다. 핸드폰이 테이블 위에 있고 없고에 따라(만지지 않는 데도) 집중력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도 있다. 친구와 대화하거나 책을 볼 때 핸드폰을 뒤집어 놓는 습관이 있는데 무의식중에 이런 영향을 느꼈던 모양이다.  


핸드폰으로부터 독립하고 싶다. 독립이 부모와 등지겠다는 뜻이 아니듯 핸드폰을 척지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핸드폰과 이렇게 붙어 있다가 핸드폰을 미워하게 될 것 같다. 이 놀라운 사물을. 아예 치워 버리자니 손님에게 전화가 올 수도 있고 근처 가게에서 전화로 주문하실 때도 있어서 난감했다. 그래서 애플워치를 샀다. 


36만원을 주고 산 워치는 소박한 용도로 쓰고 있다. 시간 확인과 전화 알림, 나이키 런 클럽. 아침에 조깅할 때 핸드폰을 두고 워치만 차고 나가면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카페에서 종일 음악을 듣기 때문에 이제 내게는 음악이 없는 상태가 더 감미롭다. 나는 활짝 열려있고 세상의 자연스러운 소리가 내게 흘러 들어온다. 요즘은 정신 단련차 오디오북을 듣느라 핸드폰을 챙겨갈 때가 많지만.


워치를 쓰면 핸드폰을 덜 할까? 핸드폰을 멀리 둔다면 그렇다. 생활에 지장 받지 않고 시간 괴물에게서 안전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핸드폰이 가까이 있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워치를 차고 핸드폰을 한다. 핸드폰을 손 닿지 않는 곳에 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두 개의 인스타 계정을 관리하고 있다. 게시물도 올리고 소통도 해야 한다. (사실 소통 면에서는 불성실하지만.) 이 작업을 하느라 핸드폰을 만졌다가 먼젓번 꼴이 난다.




워치를 작년 초여름에 샀으니 일 년 넘게 절제와 중독 사이를 오간 셈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만지는 습관은 끊은지 오래됐지만 낮부터 의지력이 약해지고 밤에는 쓰잘데기없는 짓을 많이 한다. (의지는 한정된 자원이라고 한다.)


이번 주는 핸드폰을 많이 만졌다. 인스타 돋보기에 뜬 무빙과 하트 시그널, 나는 솔로 클립 영상들을 봤다. 그러다 네이버 뉴스도 보고 관심 없는 이슈에도 기웃거렸다. 한번 어그러지면 무감각해지고 악순환이다. 이 고리를 끊고자 오늘 이 글을 쓴다.


핸드폰 액정에 '위험! 건드리지 말 것!'이라고 쓴 포스트잇을 붙여 서랍에 넣어뒀다. 일종의 결계다. 좀 웃긴데 효과가 있다. 무심결에 손을 뻗었다 아차차! 한다. 맹한 의식을 콩 쥐어박는다. 시간 괴물과는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게 제일 중요하므로 출근하면 까먹지 않고 서랍에 넣도록 알람도 맞췄다. 오늘은 시간을 지켰고 그 시간에 이 글을 썼다. 카페가 바빴는데도 쓸 시간이 있었다. 핸드폰 독립! 심신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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