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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Sep 18. 2023

아무튼, 아침

내가 아무튼 시리즈를 쓴다면

아무튼 시리즈를 아시는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이다. <아무튼 하루키>, <아무튼 방콕>, <아무튼 목욕탕>, <아무튼 트위터>, <아무튼 게스트하우스> 등이 있다. 지금까지 나온 것만 59권이나 된다. '아무튼'이라는 말맛도 좋고 거기서 배어나는 끈적임 없는 태도도 좋다. 책 한 권에 걸친 고백인데도 '아무튼, 사랑한다.' 이런 투다. 절절한 사랑보다 이런 사랑이 되려 끄떡없는 것 같기도 하다.


뒤에 붙은 주제에선 그 사람이 희끗 드러난다. 하루키나 목욕탕처럼 나도 좋아하는 것도 있고 전혀 모르는 세계도 있다. 내가 평소 심드렁한 것이라도 누군가 아무튼 피트니스! 아무튼 드럼! 아무튼 뜨개! 하고 외치면 거기에 뭔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바벨과 스틱과 코바늘이 삶에 대해 귀띔해 줄 것 같다. 아주 가까이 온 사람에게만.


당신에게도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가 있는지? 나는 있다. '아침'이다. 정확히 말하면 새벽에 가까운 이른 아침. 내가 아무튼 시리즈를 쓴다면 아침에 대해 쓰고 싶다. 아침을 싫어하는 사람만큼 아침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아무튼, 아침>은 없다. 미라클 모닝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나? 으뜸가는 낙으로 아침을 꼽은 사람이 없다고? 그렇담 침을 발라본다.




내가 아침을 좋아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자아라고 할 만한 게 생기곤 내내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는 확실히 좋아했다. 그러니 최소 15년 차 사랑이다. 고등학교 때 종종 봉고를 타지 않고 아침 일찍 학교까지 걸어갔다. 선도부도 선생님도 오기 전이라 교복 위에 스웨터를 입고 들어가도 잡히지 않았다.


밤새 갇혀있던 교실 공기의 냄새가 기억난다. 텁텁한 듯하면서 아늑했다. 나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교실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스케줄러도 쓰고 공부도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하나둘 몰려오고 아침 자습이 시작되면 졸거나 잤다. 어른들이 보면 저 청개구리, 하겠지만 나는 그 아침에 행복했다.


스무 살 때는 이른 아침부터 친구 희와 동아리방에서 글을 쓰겠다고 까불기도 하고, 남자친구와 교내 카페에서 인문학 스터디를 하기도 했다. 그는 꾸벅꾸벅 졸다가 잠들곤 했지만. 4학년 때는 수업 한참 전에 와서 혼자 맥모닝을 먹으며 할 일을 했다.


희도 남자친구도 좋았지만 혼자 보내는 아침이 가장 좋았다. 그래서 사랑하는 둘을 두고(때로는 따돌리고) 살금살금 혼자 시간을 보내러 갔다. 같이 가서 각자 할 일 하면 되는데 왜? 그들이 물으면 나는 비밀이 있는 초딩처럼 배실배실 웃었다. 인적 드문 아침, 나를 아는 이 없는 아침이야말로 내가 사랑하는 아침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아주 오랜만에 떠올렸는데도 다시 군침이 돌 정도로 아주 맛있는 아침이었다.




카페를 하면서 아침을 더 좋아하게 됐다. 그런 시간이 더 간절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카페에서 일한다. 카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고 머무르는 공간이다. 사람들과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손님의 흐름이 아니라 내 호흡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아침이다. 이쯤 되니 선명해진다. 아침에 대한 사랑은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사랑이다.


카페를 시작한 뒤로 내 아침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일어나서 출근 전까지다. 2부는 오픈 후 점심 손님이 들어오기 전까지다. 시간을 벌고 싶어서 마음 같아선 새벽 4시에 일어나고 싶다. 아침 1부는 규칙적이다. 일어나서 명상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혼자 조깅을 한다. 세상 사람들과 마주치기 전에 나와 제일 먼저 만난다.


아침 2부는 후다닥 오픈 준비를 마치고 글을 쓰는 시간이다. 이 아침은 좀 더 엉성하다. 할 일이 많을 때도 있고 손님이 올 때도 있고 딴짓할 때도 있다. 그래도 12시 전에는 바쁘지 않으므로 뭐라도 쓰려고 꼼지락거린다. 점심 손님을 맞이하며 기지개를 켜고 나면 카페란 기본적으로 어수선한 곳이다. 여기저기서 나를 찾는다. 들어오고 나가고 들어오고 나간다. 종일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집중력을 엿가위로 치는 것 같다. 산만함을 뚫고 정신을 집중하기가, 사고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쓰는 글은 거의 아침에 태어났다.




아침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아침에 빚지며 살아왔다.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주는 아침. 점심과 저녁을 버티게 해주는 아침. 게다가 내가 사랑하는 아침은 공짜다. 매일매일 주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게 매일 무료로 주어진다니. 어떤 아침을 엉망으로 보내더라도 다음날 다시 흰 아침이 주어진다. 쉬는 날에는 더 일찍 일어나고 싶다. 하루뿐인 휴무에 5시에 일어나면 엄마는 의아해한다. 아침을 만날 생각에 꼭두새벽에 눈을 번쩍 뜨는 것. 이게 사랑 아닐까?


첫새벽에 일어나 따뜻한 물로 천천히 샤워를 한다. 물을 끓여 페퍼민트를 한잔 우린 뒤 책상 앞에 앉는다. 창밖은 캄캄하고 아침이 올 기미도 없다. 소음도 없고 음악도 없고 사람도 없는, 밤과 아침의 건널목. 이 고요한 교차로. 정신과 기분 모두 갓난아이 이마처럼 무구하고 보드라운 시간. 나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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