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모씨 Sep 21. 2023

첫 서핑이 내게 귀띔해준 것들

여름휴가로 가족들과 다낭에 갔다. 다낭의 미케비치는 서핑을 하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전에 서핑에 빠진 친구가 금요일이면 퇴근하자마자 양양으로 향하던 게 생각났다. 시간이 날 때 하는 취미와 시간을 내서 하는 취미 중 서핑은 후자였다. 한번 발을 담그면 깊이 빠지는 듯했다. 


간 김에 한인 서핑샵에 강습을 신청했다. 실전에 앞서 간단한 이론 수업을 받았다. 하나의 파도에는 한 명의 서퍼만 탄다는 것도 배웠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 모래사장에서 기본 동작을 연습했다. 순서와 포인트, 주의할 점을 모두 신경 쓰려고 하니 뭐 하나 챙기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엄마와 아빠는 한국인 강사와, 나와 동생들은 프랑스인 강사 줄리앙과 했다. 가족들과 함께 왔지만 하다 보니 서핑은 혼자 하는 것이었다. 가족 중 누군가 보드 위에 서면 환호해 주고 물에 고꾸라지면 격려해 줬지만 보드 위에선 혼자였다. 우리는 모여있다가 점차 퍼졌고 나중에는 자기에게 집중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시도에서 나는 일어나지 못하고 물에 처박혔다. 넘어질 때 보드에 맞을 수 있으니 머리를 감싸라고 했다. 하지만 그럴 새 없이 보드에 맞았다. 많이 아프진 않았지만 크게 다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졸았다. 아, 마냥 재밌진 않네, 생각했다. 


다시 줄리앙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물을 먹어서 정신이 없었다. 초보자용 보드는 크고 무겁고 자꾸 물살에 밀려났다. 나는 파도를 맞으며 헤맸다. 줄리앙이 손짓하며 거기가 파도가 부서지는 곳이라고, 거기를 지나면 괜찮다며 더 들어오라고 외쳤다. 그곳을 지나자 파도는 수평선에서 카펫을 터는 것처럼 굴곡을 그리며 부드럽게 흘러갔다. 물결을 따라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파도는 내가 허우적거리던 곳에서 철벅철벅 부서졌다. 어쩌면 요즘 내가 헤매고 있는 곳이 파도가 부서지는 구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길 지나면, 더 깊이 들어가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가 보드에 올라 타자 줄리앙은 고개를 돌려 파도를 살폈다. 어떤 파도는 낫 굿, 하며 보내줬다. 내게는 똑같은 파도지만 그는 파도를 가려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보드에 누워 줄리앙은 어쩌다 프랑스에서 베트남의 한 해변까지 흘러 들어왔을까 생각했다. 그때 그가 패들! 하고 신호를 줬다. 나는 보드에 엎드린 채 팔로 물을 저었다. 그가 테이크 오프! 하고 외치면 재빨리 일어서야 했다. 하지만 물 위에서 중심을 잡고 일어난다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무슨 포세이돈의 영역처럼. 나도 모르게 아마 안 될 거라는 생각을 품고 시도했던 것 같다. 나는 일어서는 시늉만 하다가 물에 빠졌다.


줄리앙에게 돌아가자 그는 사인을 주면 머뭇거리지 말고 빠르게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반박자 정도 느렸다. 망설였기 때문이다. 줄리앙이 말했다. 네가 두렵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이게 쉽다는 걸 알고 있어. 그 순간 내가 문을 살짝만 연 채 문틈으로 배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보드에 엎드려 물살을 저으며 그의 말을 되뇌었다. 이건 쉬워, 이건 쉬워. 그리고 나는 일어났다. 잠깐이지만, 어정쩡한 포즈지만 파도를 탔다. 짜릿했다. 나는 패들을 할 때마다 이건 쉬워, 망설이지 말고 빨리, 하고 중얼거렸고 여러 번 엉거주춤 일어났다.


동생이 내가 일어선 후 금방 다시 앉는다고 알려줬다. 초반에 고꾸라지며 보드에 맞은 기억 때문에 보드가 날 뱉기 전에 먼저 내리려 했던 것이다. 내릴 생각 하지 말고 최대한 오래 타야지 했는데 강습 시간이 끝났다. 조금 아쉬웠지만 초콜릿에 있는 약간의 쓴맛처럼 나쁘지 않았다. 경험의 풍미를 살리는 아쉬움이었다. 꽤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도감도 들었다. 시원섭섭하게 첫 서핑이 끝났다. 


그날 줄리앙은 서핑에 대해 조언한 것뿐이겠지만 내게는 서핑을 넘어서는 이야기로 남았다. 름은 이 글을 읽고 내 소설이 생각났다고 했다. 나는 몇 년 전 <홀리데이>라는 소설을 쓴 적이 있다. 가족 여행을 다룬 이야기였다. 가족 여행은 인스타의 사진 몇 장처럼 팔랑팔랑한 시간이 아니니까. 가족은 호텔 객실에 깔린 무겁고 어두운 카펫에 가깝다. 푹신한 그 카펫에 얼마나 많은 얼룩이 있을까? 그게 보이면 우리가 거기 있을 수 있을까? 가족 여행은 가족의 곪은 면을 드러내는 데 선수다.


나는 그 소설을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할지 잘 몰랐다. 소설은 불화 이튿날 가이드가 지상 낙원이라는 곳에서 가족사진을 찍어주며 끝난다. 가족들은 멋진 풍경을 등지고 김치, 하며 웃는다. 소설 속 '나'는 미래를 향해, 미래에 이 사진을 볼 사람을 향해 웃는다. 름 이야기를 듣고 나자 다른 결말이 떠올랐다. 름은 행복한 가족이란 행복한 개인들이라고, 각자 행복해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해왔다. 나는 소설 속 가족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 각자의 파도를 탔으면 좋겠다. 따로 또 같이. 


이상 내가 첫 서핑에서 배운 것들.

이전 09화 쓰는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