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 나다

나는 린넨으로 태어났다

by 이아침

나는 지금 린넨 셔츠와 린넨 바지를 입고 있다. 나는 구김이 싫어 티셔츠조차 다려 입는다. 린넨은 잘 다려도 금세 주름이 진다. 나는 린넨 같다. 주름이 잘 가는 사람이다. 나는 나일론이나 울로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린넨으로 태어났다. 쉬이 주름진다. 린넨을 주름 없이 입을 수 있을까? 없다. 린넨의 주름을 린넨다움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나는 나일론 트레이닝복이나 울 스웨터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구김이 싫지만 린넨이 좋다. 내 성질머리와 싸우며 실은 내 성질을 좋아한다. 린넨의 숙명을, 주름을 기껍게 받아들이고 싶다. 다만 한 손에 스팀다리미를 쥐고. 스팀다리미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하고 싶다.


일기 쓰기란 하루의 주름을 읽고, 옮겨 적고, 스팀다리미로 펴는 일이다. 일기는 주름. 오늘 나의 구김에 대해 적는다. 하루가 시작되면 이런저런 생활 주름이 지기 시작하니까. 즐거운 주름, 괴로운 주름. 항상 쓸 게 많다. 나는 잘 구겨지는 린넨이니까.


어젯밤 투명 매니큐어를 바르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불에 닿았나 살짝 광택을 잃어 있었다. 나는 매니큐어 솔 자국도 견딜 수 없다. 한 콧 덧바른다. 어지러운 책상과 깨끗한 손톱. 점을 빼서 듀오덤을 붙이는 중인데 반듯하게 오리려다 늦었다. 나는 너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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