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빵 이야기
사카린 몇 알이면 단맛을 즐길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 하얀 설탕 차르르 뿌려진 호루네 찐빵. 그 찐빵은 지금도 생각난다. 휘청거리는 오후 합죽한 배는 꼬르륵 울었고 허기진 배를 채워 줄 내 주머니 사정은 찐빵 하나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 작은 찐빵 하나가 남긴 모진 서러움은 무쇠 솥뚜껑만큼이나 단단하게 굳어 있었는지 지금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야무지게 포장되어 있지만 그 속내를 들어가 본다면 가마솥 뚜껑 열리는 소리와 함께 봉긋봉긋 잘 부풀어 올랐던 그 하얀 찐빵을 김서린 유리창 너머에서 코를 박고 바라보다가 침을 삼키며 발길을 돌려야 했던 배고픈 아이의 허기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찐빵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시무룩하게 돌아서던 그 아이의 모습 그 상황이 한 폭의 그림처럼 떠오른다.
그때는 먹어도 허기지고 생각만 해도 배가 고팠다. 어쩌다 몽실몽실 잘 부푼 그 찐빵 하나, 손안에 들어온 날이면 한입 성큼 베어 물지도 못하고 요리조리 얼래고 달래며 견주다 보면 먹는 둥 마는 둥 어느 순간 빈손만 남았고 그 아쉬움은 손 끝에 묻은 설탕물까지 쪽쪽 빨아먹게 만들었다. 속살까지 부드럽고 달달하던 그 맛. 지금도 잊기엔 아쉬움이 더 많은 추억의 찐빵이다. 그렇게도 맛있었던 그 찐빵은 아무리 생각해도 작아도 너무 작았다. 국그릇 만해도 작다고 할 판에 간장 종지만 한 그 찐빵은 배고픈 아이에겐 얼마나 더 작았을까! 차라리 크지만 시큼 털털했던 수리네 찐빵 그런 정도의 맛이었다면 크고 작은 양을 탓하며 아쉬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끈한 찐빵 하나를 맘대로 먹을 수 없었던 작은 주머니 사정을 탓하며 침 흘리기보다는 차라리 오디가 빨리 익기를 바라는 편이 더 나았다. 돌무더기 속에서도 때를 따라 잎을 피웠던 토종 뽕나무는 누애를 키워 내고도 새까맣게 잘 익은 오디를 내어 주었다. 고마운 뽕나무의 그 작은 오디 알. 맛있게 달콤했던 그 맛은 유리창 너머 그림에 떡 같은 그 찐빵보다 훨씬 가까웠다. 내 부지런함이 얻어 낸 자연 간식은 주머니 사정 탓하지 않아서 정말 좋았다.
지금은 어디서나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찐빵이지만 아쉬움도 많았던 그 찐빵의 추억. 이제는 더 크고, 더 달고, 더 맛있게 빚어낸 오색 찬란한 그 어떤 찐빵에서도 그때 그 맛 그 달달한 추억은 되살릴 수가 없다. 풍요로움이 빚어낸 입맛의 부작용인지 거만한 배부름인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냥 추억으로 덮어 놓는 것이 좋겠다. 그래도 지금은 배고프지 않아서 좋은 세상이다.
누구는 갑자기 가창찐빵이 생각난다고 하고 나는 안흥찐빵이 더 좋다며 밀고 당기며 주문을 할까 말까 반반 치킨도 아니고 누구라도 한 사람은 양보해야 하는 찰나에
“코로나로 어려운 소상공인 돕기” 강원도 안흥찐빵을 팔아 달라는 지인의 문자가 날아든다. 그래 겸사겸사 안흥찐빵 쪽으로 마음을 돌려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불통이다. 다시 걸려 오는 전화도 없는 걸 보니 사업이 어려워 접었나?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지인의 소개이니만큼 조금은 염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