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 이야기
“집에 화장지가 다 떨어져 가네 내일이나 모레 마트 가서 화장지 하나 사 와야겠어.”
손끝만 까딱하면 원하는 것이 문 앞에 도착해 있는 세상인데 기어이 그 등치 큰 화장지를 끙끙거리며 들고 오시겠다. 있어봐요.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전에 같이 근무했던 언니가 무슨 화장지 주문해서 쓰는데 좋다고 그 화장지 쓰다가 “다른 것은 못쓰겠다.” 고 했는데 기왕이면 좋다는 것 한번 써보자 싶어서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흔들어 넘치게 생각을 해봐도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별 관심 없이 지나쳤던 말인데 이럴 때는 왜 이렇게 궁금하고 생각은 왜 또 이렇게도 나지 않는지 답답해 못 살 것 같다.
무작정 전화를 걸 수도 있지만 잠시 상황 파악을 위해서 ‘지금 근무 중인가요?’ 갑자기 궁금한 게 있어서 뭐 좀 물어보려고 한다며 카톡으로 옆구리를 찔러본다. 읽기는 하는데 답글이 없다 아 바쁜 모양이구나 무슨 반응이 올 때까지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그러는 사이 전화가 걸려온다. 함께 근무하면서 일이면 일, 수다면 수다, 옳은 건 옳고 아닌 건 아니라고, 오너를 비롯해 불특정 다수의 삐딱한 부분은 씹어야 맛이지. 어디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쿵작이 잘 맞았던 터라, 개인 사정으로 헤어지면서 아쉬워하며 서로 자주 만나자고 꼭꼭 약속은 했지만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만나기 쉽지도 않지만 코로나까지 우리의 만남을 방해하고 있어서 1년 가까이 얼굴을 못 보고 지내는 중이다. 오랜만에 목소리만 들어도 어제 본 듯 역시나 잘 통한다. 즐겁게 출퇴근을 하며 수다 삼매경을 누빌 때 그때가 재미있었구나 싶다. 아직도 꿋꿋하게 근무 중인 그 언니는 그쪽의 근황을 전달하기에 바쁘다. 누구는 어떻고 하다가 누구는 돌아가신 지 한 달쯤 되었다고 전해준다.
백세시대에 연령으로 봐서는 아직 한창이라 해야 맞겠지만 이미 몸져누운 지 2년이 넘었으니 등줄기며 허리며 뼈 마디마디마다 얼마나 아프고 불편했을까!
유동식으로 연명하며 2년을 더 사셨으니 그래도 오래 사셨어. 플라스틱 빨대로 온 세상 좋은 것 다 빨아들인다 한들 생명 연장에는 한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루를 더 살아도 이틀을 더 살아도 누가 대신할 수도 없는
고생길인걸 뭐 달리 할 말도 없고 한마디로 ‘잘 가셨다.’라고 했다. 그런데 있잖아 “그 집 딸내미 혼자 효녀 인척 별나게 그러더니 엄마 영안실로 떠나기도 전에 애들 밥해 먹여서 학교 보내야 된다고 먼저 가더라며 자식 다 소용없어.”한다.
돌아가신 엄마야 혼자 있는지 자식들이 곁에 있는지 말이 없지만 제삼자가 보기에도 어지간이 섭섭했던 모양이다. 그러게 영안실로 떠나고 난 후에 가지 왜 그랬을까! 좀 아쉽긴 하네. 분위기상 상대방 이야기 듣다 보니 정작 그 좋다던 화장지 이름은 묻지도 못하고 끝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