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격태격하면서 하루를 산다

이렇게 하루를 살아갑니다

by 수국

— 수공부를 하며 —

열두 명의 친구들에게 노트와 색연필을 하나씩 나누어 주며 오늘은 수공부를 합니다. 이 친구들을 세워놓고 숫자 세기를 해보면 하나 둘 셋...... 열둘까지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하나만 잘하는 친구는 어디에 있어도 하나만 외치고 일곱을 잘하는 친구는 위치 상관없이 일곱만 외치기 때문이다.

하나만 잘하는 친구는 첫 번째 무조건 일곱만 외치는 친구는 일곱 번째 열둘을 잘하는 친구를 맨 끝에 세우고 나니 그런대로 번호 맞추기가 될 것 같다.

오늘은 1 2 3 4...... 15까지 쓰고 하나 둘 셋넷...... 열다섯까지 셀 수 있도록 공부합니다. 숫자가 어떻게 생겼던지 상관없이 자기 이름만 열심히 쓰는 친구. 공부하라고 했으니 이름도 못 쓰는 예림이는 흡사 개미떼처럼 까맣게 그리고 있었다. 예림아 이거 뭐지? 물어도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대답이 없다.


— 어머니의 염려 —

어느 날 아침 “예림이 엄맙니다. 예림이 왔습니까?”

예, 잘 도착했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다 잘 갔구나.”

전화선을 타고 흘러나오던 어머님의 목소리는 흥분되었다.

“오늘은 혼자 버스 태워 보냈습니다.”

마음을 안정시키려 숨을 몰아쉬면서 감격하며 놀라는 그 느낌은 전화선을 타고도 강열하게 전달되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기특함에 예순이 넘은 어머니는 감격하며 전화통화를 끝낸다. 보통 엄마들은 신경도 안 쓰는 버스 타기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예림이에게는 너무나 큰일이었기에 숨이 멎을 정도로 애태우다 안도의 숨을 쉬며 감격하는 것이다.


그 이후로 예림이는 1이 뭔지 2가 뭔지 3이 뭔지도 모르니 혼자서는 버스를 보고 탈 줄도 모르지만 버스를 태워주면 집과 작업장을 오고 가는 것은 또 신기하다. 이렇게 훈련된 지도 얼마 되지는 않았다. 한 계단 오르면 두 계단 올랐으면 싶은 게 사람 욕심인데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다른 사람들처럼 인생의 높은 산 정상까지 혼자 훌쩍 뛰어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큰 욕심부리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다닐 수만 있어도 걱정 접어 둘 텐데 앉으나 서나 자식 걱정. 걱정 끝이 없는 예림이 어머니를 비롯하여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어머니들에게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 인지기능 향상을 위해 하루 한 시간이라도 숫자공부와 한글 공부를 하고 그 외 퍼즐 맞추기 그림 그리기 시장놀이도 하며 뇌활동과 사회성 향상을 위해서 각종 사회적응훈련도 한다.


— 부담스러운 공부시간 —

한 시간 정도 공부하게 한 후 이제 자신 있는 사람 발표해 봅시다. 먼저 할 사람 오세요. 한 사람씩 앞에 서서 1 2 3...... 12. 하나둘셋열둘까지만 셀 줄 알면 아이스크림 하나씩 줄게요. 그러면 뒤에 있는 친구들은 빨리 통과해야 아이스크림을 먹을 텐데 싶어서 마음이 바빠진다.


몇 명은 30까지 틀리지 않고 자신 있게 잘했는데 진영이는 1 2 3 4 하나 둘 셋...... 여덟여덟여덟 계속 여덟만 외친다. 틀렸어요 다시 해보세요. 여전히 6 여덟, 7 여덟, 8 여덟. 여덟에 멈춰버렸다. 왜 그럴까. 노트에는 다 맞게 잘 썼는데 얼굴은 붉어지고 노트를 잡은 두 손은 달달달 떨리며 어쩔 줄을 모른다.


이 친구들에게 못할 짓을 한 것인가? 잠시 생각하며 멈춰 보았지만 안돼 그래도 교육과 반복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특수학교나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과 어눌하고 잘 못한다고 교육의 기회를 놓친 친구들은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 수다와 간식시간 —

열두 명의 발표가 다 끝나고 공부하기 참 힘들었지요? “예, 공부 재미없어요.”모두 다 잘했어요.

이제 아이스크림 한 개씩 먹고 좀 쉴게요. 간식시간도 아닌데 이 친구들 덕분에 모두 다 같이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좋아하며 조금 전 주눅 들었던 모습이나 손과 입이 달달달 떨었던 것은 간곳없고 모두 즐겁고 행복한 시간으로 바뀐다.


때로는 “엄마, 자기야, 선생님 선생님 때문에 못 살겠다” 했다가 “선생님 귀엽다”했다가 기분 따라 들었다 놨다 맘대로 굴려도 밉지 않은 사람이 이 친구들이다. 뱃살이 출렁출렁 뚱뚱한 몸을 흔들며 춤을 추던 주희에게 살 좀 빼라고 구박하던 진영이의 그 말이 웃겨서 나는 뚱뚱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선생님은 쉰 세대라서 “좀 있으면 할머니 될 거니까 괜찮아요.” “선생님은 지금도 청바지가 잘 어울리니까” 괜찮다고 다시 고쳐 말한다. 신세대는 뚱뚱하면 청바지가 안 어울리기 때문에 살을 빼야 된단다.


— 사랑이 뭐길래 —

"선생님, 선생님 내 말 한번 들어봐요. 진영이 오빠가 내 귀에다 내 사랑이라고 했는데 내 사랑이 뭐예요? “

진영이가 너를 좋아하는 모양이네. 씨~익 웃는 주희.

“나한테 누가 시집 올 사람 없을까. 여보!라고 부를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서른두 살 진영이의 말이다. 이렇게 행복의 조건들을 내세우며 매일같이 티격태격하면서도 눈만 뜨면 찾아와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만남의 장소는 장애인 재활 공동작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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