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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May 31. 2022

시간은 도둑맞고 콧물은 멈췄다

이래도 되나요


 산길을 돌고 돌아서 수목원이다. 하늘과 가까운 이곳은 오월 중순의 날씨지만 한 겨울 같다. 몇 시간을 찬바람과 맞서며 걷다 보니 목이 쐐하다. 어찌나 추운지 입을까 말까 망설이다 두고 온 긴팔 티셔츠 생각이 자꾸만 난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이렇게 찬바람과 싸우며 옷깃을 여며야 하는지 날씨도 별스럽다.


삼 사월도 아니고 여름 같았던 어제와 오늘이 이렇게 다를 수가 오리털 파카를 입었으면 딱 좋을 날씨다. 뜨거운 국물 생각이 절로 난다. 점심은 따끈한 칼국수를 먹자고 의견을 모았다. 모두가 다 추웠는지 의견 일치다. 오들오들 떨던 산에서 내려와 들판에 자리 잡은 칼국수 집으로 따뜻함을 기대하면서 들어간다. 그곳도 따뜻함은 뒷전이고 비닐 문짝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허술한 집이다. 맛집이라 소문 듣고 찾아간 곳이다. 입을 꼭 다물었지만 턱이 달달 떨린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다 먹어도 틈새 바람은 얄밉게 차갑다. 이럴 땐 뜨거운 찜질방에서 노글노글 몸을 녹이고 싶다.


산에서 내려와 점심을 먹고 지척에 바다를 두고 그냥 발길을 돌릴 수는 없지. 모두 바닷가 모래밭에서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휘몰아치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답답한 마음도 훌훌 털어본다.


꽃피는 오월 봄나들이는 제대로  모양이다. 산과 바다를 마음에 담아  대가로 밤새 끙끙 앓았다.  뜨자 말자 재채기에 콧물이 줄줄 흐른다. 화장지로 흐르는 콧물을 닦아 내지만 멈출 줄을 모른다.  놓고 일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다. 뜨거운   숟갈 먹으려고 고개 숙였다간 국그릇에 콧물이 뚝뚝 떨어질 판이다. 코만 붙들고 있을 수도 없고 휴지를 배배 틀어 콧구멍을 막았지만 뚫린 구멍이라고 끝도 없이 흐른다. 콧물을  막아 버릴 특별 조치가 필요하다. 코끝은 어느새 따끔거린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번째일  알았더니 벌써 두세 명이 먼저  있다. 두시에 진료 시작하면 10 안에 진료는 끝날 것으로 예상하며 빨리  왔다. 오랜만에 잡지책을 뒤적이며 오후 진료 시간을 기다린다. 콧물은 거침없이 줄줄 흐른다. 콧물 받이 깡통이라도 받쳐 두고 싶다. 대신 휴지를 둘둘 말아 코를 움켜쥐고 있으려니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진료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환자들은  많이 모여들고 대기실은 분주하다.

 

이제는 진료 시작하겠거니 생각하고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두시  분이다. 아니 진료실 문은  닫힌  조용하다.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지 빨리 가야 되는데  이러느냐고 묻고 싶지만 무슨 일이 있겠지 억지로 태연한  기다려 본다. 그때 어떤 아주머니가 “안에 원장님  계세요.”“ 이렇게 진료를  하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던  아주머니.   강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마디 거들고 싶었지만 자제하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간호사의 답변 “원장님 중요한 전화 통화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조금을 기다리는 것이   분이 흐르고 여러 사람들이 술렁술렁. “ 이런 병원이  있어하며 어떤 아저씨는 짜증을 내고  나가버리고 여학생 둘도 일어나 실룩실룩 걸어 나갔다. 아까  아주머니는 계속 짜증을 내고 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들 바쁜데  이러느냐라고 간호사들에게 한마디 던졌다. 최소한 시간 단축하려고 점심시간부터  서기를 했는데 이게 뭐야 끝나고 갔어도 벌써 갔을 시간인데 세시가  되도록 코를 훌쩍거리며 앉아서 열을 올리고 있으니 아무리 개인병원이라지만 이건 아니다. 원장님, 너무하십니다.


여러 환자들은 진료시간  지킨다고 화가 나서 돌아섰다. 웬만했어도  버렸겠지만 정도가 너무 심하니 짜증은 났지만 기다렸다.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끝까지 기다린 끝에 진료실로 들어오라는 소리에 원장님 앞에 앉았다. 원장님은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고 당연한 것처럼 너무도 태연하게 진료를 시작한다. 뾰족한 기계를 코에 대니 야단스럽게 “쒸쒸싯, 쒸잇" 소리를 내며 소독하는 건지, 약을 뿜는 건지, 코를 뽑는 건지 상세한 설명도 없다. 그러고 나니 코가 개운하고 콧물이 신기하게도 멈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재채기에 콧물이 줄줄 흘렀고 그래서  짜증스러웠는데 진작 빨리 해줬으면  인생  시간은  시원하게 살았을 텐데 여러 사람 애태우며 화나게 했으니 원장님 나빠요.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레미콘 콘크리트라도 쏟아붓고 콧물을 콱 막아 버리고 싶을 만큼 불편했던 내 콧물이 멈추고 나니 하늘에서 소나기 한차례 쏟아진다. 약봉지를 품에 안고 머리는 숙이고 눈을 부릅뜨고 좌우를 살피며 뛰어본다. 빗물인지 콧물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뻔했는데 단번에 효과를 보게 했으니 다행이다. 아무리 개인병원이지만 많은 환자들의 시간을 뺏고 개인일을 보고 미안한 기색도 없었던 원장님은 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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