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국 Jun 09. 2022

사고 치고 후회한다

잠시 멈춤의 시간이 필요해


“아야”외마디 비명과 함께 코를 움켜쥐고 그 자리에 팍 주저앉았다. 콧대는 박살 나고 눈알은 빠지는 줄 알았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이마도 박았다는 걸 깨달았다. 콧대의 고통에 모든 신경은 얼굴 중심으로 향했다. 그래도 코피는 나지 않았다. 피를 보았다면 더 놀랐을 텐데 다행이다.


정신을 차리고 찡하게 욱신거리는 코가 궁금해서 거울 앞에 섰다. 콧대 오른쪽 옆선이 푹 꺼져 있었고 피부도 기절한 듯 그 부분만 유난히 하얗다. 코뼈와 피부는 살아날 것 같지가 않았다. 계속되는 통증에 불안한 마음은 더 깊어지고 다 저녁때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잠시나마 혼란스러웠다.


빨래 그까짓 거 좀 날아가면 어때서 하필이면 흰 빨래가 가득 널려 있었던 빨랫대가 넘어지려 흔들거렸다. 갑자기 불어 온 돌풍에 비틀거리던 빨랫대를 구하려다 사고를 낸 것이다. 꽝 부딪치고 나서야 잠시 멈춤의 여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된다. 늘 잘 다니던 곳인데도 출입구 문 여는 것조차 잊어먹고 유리문에 정면충돌하고 말았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동네병원을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의사는 소견서를 써 주었다. 당장 죽을 만큼 응급상황은 아니기에 그다음 날 아침 종합병원으로 갔다. 일반 진료 접수를 하려니 응급실로 접수를 하란다. 아, 빨리 치료를 해야 하는가 보다 하고 응급실에서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 응급실 한쪽에 홀로 앉아 언제 부를지 몰라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기다리다 보니 점심도 굶고 하루 종일을 기다렸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CT를 찍고 피검사와 간단한 문진을 했다. 부기가 빠져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며칠 후로 수술 날짜를 잡아 주었다. 당장 수술할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바쁜 응급실로 보냈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종합병원에 병 고치러 갔다가 성질 급한 사람은 기다리다 지쳐서 숨 넘어갈 것만 같았다. 개인 병원과 다르게 오랜 기다림 속에서도 왜 이렇게 늦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응급차량은 수시로 환자들을 태워왔다. 붉은 피 보는 걸 제일 무서워하는 나는 응급차 소리가 날 때마다 제발 피투성이 된 응급환자만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히도 기다리는 동안 그런 환자는 들어오지 않았다. 억울하면 아프지를 말아야지. 내 생애 처음 간 응급실에서 마음 조리며 떨었던 하루였다.


 며칠  다시 찾은 병원,  번째라 조금은 익숙했지만 수술 대기  불안에 떨기는 마찬가지였다. 부러진 콧뼈만 수술하면 되는데도 이렇게 무서운데  수술받는 사람들은 정말  심정이 어떨까. 수술실에서 나온 모습은 볼만했다. 콧등에는 널찍한 반창고가 붙어있었고 양쪽 콧구멍에는 코안 가득 심지를 박았다. 붕대를 접어 양쪽 코끝을 막아 심지가 빠지지 않게 좌우로 반창고도 길게 붙여 놓았다.


얼굴만 보면 중상인데 집으로 가란다. 하긴 입원할 병도 아니고 입원해봐야 병원에서 처치해줄 것이 없으니 당연히 가야지. 그런데 갈수록 통증은 더 심해지고 별난 모양만큼이나 숨쉬기도 어렵다. 입으로 "헉헉 푸푸" 숨을 쉬며 콧구멍 두 개가 제 할 일 잘하고 있을 때 그렇게 소중하고 고마운 줄 몰랐다는 게 미안했다.


며칠 동안 두통을 겸한 통증에 남모르게 고생했다. 예정된 날짜에 병원에 가서 콧구멍 두 개가 빵 뚫렸을 때 그 시원함이란 최고였다. 모든 기능이 제대로 돌아갈 때 당연히 있는 줄 알지만 불편을 겪어봐야 작은 것 하나도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하필이면 다친 그 자리가 안경 코가 닿는 곳이라 혹시나 또 콧대가 내려앉을 까 봐 안경은 코 끝에 어설프게 걸치고 생활해야 했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은 도둑맞고 콧물은 멈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