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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Jun 22. 2022

미역국 한 그릇은 사랑 한 그릇

생일은 왜 이래 자주 오는 거야

자녀에게 가정교육이라고 입버릇처럼 했던 말은 누구에게라도 폐 끼치지 말고 욕먹지 않을 만큼 인간으로서 할 도리 기본은 잘하고 살아라. 그렇게 말했을 때 아들이 했던 말은 “엄마 기본 그것이 어려운 거예요.”

그런가 마음을 담은 따뜻한 말 한마디, 시원한 냉수 한잔, 따뜻한 국 한 그릇. 그 소박함에도 마음을 담았다면 충분히 감동할 수 있는데 사람마다 그 기본이란 게 다를 수는 있겠지. 그래서 그것이 어렵다고 하는구나.


힘에 넘치게 잘하려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마음 나누며 인간답게 살 수 있을 텐데.

기본 그거 너무 어려워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들아!


나이 먹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생일은 왜 이렇게도 빨리 다가오는지. 작년에 며느리가 백화점에서 사준 옷도 아직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했는데. 올해 생일은 또 다가오고 옷이랑 신발이랑 생일선물을 받고 나니 따뜻한 그 사랑에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 이만하면 됐다. 이제 그만 생일 당일은 미역국이나 끓여 밥이나 같이 먹고 집에서 보내면 되겠다.


“한정식집에 저녁 예약을 했으니 그날 시간 비워 두세요”라고 아들이 예고를 한다.

됐다 그만. 하지 말라고 해도 “일 년에 한 번인데 뭐, 미역국은 언제나 먹을 수 있으니까”

호의를 너무 거부해도 밉상일까 봐 입을 닫았다. 그래 알았다.


그러면서 예전에 젊은 교수님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 난다. 수업시간에 여담으로 특별히 어머니들에게 당부했던 그 내용은 “자식들이 맛있는 거 사주면 맛있게 잘 먹고, 용돈 주면 거부하지 말고 무조건 고맙다 하고 받아 쓰세요.” 어머니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고 절약해서 아들 딸 잘 살라고 생각하지만  “그 돈 저축 안되고 친구들 만나 엉뚱한 데로 다 빠져나가 없어집니다”


주면 “고맙다” 그러고 받아 쓰고, 옷 사주면 장롱 안에 걸어두고 아끼지 말고 “제발 새 옷부터 입고 다니세요. 그릇도 좋은 것은 손님 오면 쓴다고 아끼지 말고 좋은 것, 예쁜 것부터 먼저 사용하세요. 요즘 집에서 손님 칠일 몇 번이나 있겠어요."라고 강조했다.


“자식들 밥 먹고 살만큼 키운다고 어머님들 평생 고생하셨는데 왜 그러십니까”

“자식들이 주면 누리고 사세요.”라고 열을 쏟았다.


 교수님은 "어머니의 모든 세금은 자기 통장에서 다 나가도록 자동이체로 해 놓았어요. 부담 갖지 말고 쓰라고 용돈을 드려도 절약정신이 몸에 배여서 그것도 아까워서 못 쓴다."며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본인 어머니 예를 들며 두 번 세 번 다시 강조했던 그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이야기가 “우리 어머니는 국민 연금을 일찍부터 넣어서 그래도 매달 연금이 75만 원씩 나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라고 그 말은 마음을 찔렀다.


난 뭐지. 노후보장 연금도 제대로 준비 못했는데 어쩌지. 난 자식이 연금이라 생각하며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오기도 빠듯했는데 어쩐다니. 몰라. 하루 새끼 밥 굶기야 하겠나 뭘 더 바랄 것이 있어 건강이 제일이지. 건강한 정신과 몸이나 잘 챙기며 살자.


다른 수업내용은 다 잊어 먹었으면서도 전공과는 상관없는 여담 이런 건 또 어떻게 잊어 먹지도 않고 잘 기억나는지. 아들 며느리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감동되어 번쩍 생각이 떠올랐나 보다.


생일 저녁 예약은 되어 있으니 당일 아침은 바쁘게 출근하는 아들 며느리 따뜻한 국이라도 먹여 보내려고 미역국 끓여서 부지런히 들고 갔더니 세상에 이런 일이! “아들이 미역국 끓였어요.” 하며 며느리가 아침상을 차렸다. 이건 국 한 그릇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 한 그릇, 사랑 한상을 받았다. 구색 갖춘 음식 종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기본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야 한 가지라도 따뜻한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으면 되는 거라고.’

받는 이는 그 마음에 감동하고 그러면 되는 거지.


요리사도 아닌데 맛있게도 끓였다. 출근 준비도 바쁜데 상 차리는 며느리의 뒷모습이 사랑스럽다. 엄마도 나름 육수 내고 한우 고기 넣고 정성껏 국 끓여 들고 갔지만 엄마 미역국은 아들 미역국에게 밀려 뚜껑도 열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마음이 훈훈해졌다. 자식들의 호의에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것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편하고 더 익숙한 부모라 그런가. 이것만 해도 됐는데 저녁이라는 거창한 생일 밥상이 대기 중이니 생일한번 거하다.

날씨가 계속 가물 정도로 쨍쨍하더니 내 생일날 왜 이렇게 비가 내리는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빗길이라 밀리는 도로 위에서 예약된 장소로 가는 길은 불편하지만 빗속을 걸으며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널찍해서 속이 시원하다.


예약된 방으로 우리는 들어갔고 육해공 가지가지 요리가 코스별로 나왔다. 너무 많은 거 아닌가 했지만 그래도 하루의 에너지를 다 소비한 저녁이라 음식을 남김없이 맛있게 잘 먹었다. 27개월 손녀가 제일 좋아하는 '생일 축하 노래 부르기' 손뼉 치기와 촛불 끄기는 빼놓을 수 없는 특별순서다. 생일이라고 메뉴에 없었던 전복 미역국도 서비스로 나왔다. 올해 생일 미역국은 3차까지 대 풍년일세.


배부른 차에 화장실에 갔다가 따뜻한 온수에 손을 씻으며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에 많은 생각을 한다.

나는 뭐 이 수돗물만큼 따뜻한 사람인가? 이런 따뜻한 대접을 받아도 되는가

나도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되겠지.

감사한 마음이 온수처럼 흘러나오는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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