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르륵 맥주병이 수영장을 가다(1)

행복의 기준이 있나요(코로나 전 이야기)

by 수국

내생에 처음으로 수영장을 갈 수 있는 행운을 만났다. 물 가운데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물을 제일 무서워하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속으론 걱정되지만 피할 수 없기에 즐겁게 받아들여야지. 그나저나 수영장이란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물은 관심 밖이다. 수영복은 뭘 입어야 할지 과연 그 잘난 몸매 노출시키며 나갈 수나 있을까 걱정이다.


허벅지도 적당히 가려지고 앞가슴도 얌전히 가려진 수영복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보니 이 정도면 덜 민망할 것 같다 싶은 그럴싸한 수영복 하나 구해놓고 혼자 만족스러워했다.


내생에 처음으로 수영장 갈 일이 생겼다니까 아들이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제가 사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고마워! 다음날 수경과 수영모 방수가방에 귓구멍 마개까지 세트로 다 사 왔다.


“이거 메이커예요” 고마워 아들!

돼지에게 진주를 물린 격이었다.

진까를 바로 알아채지 못했으니까 나중에 보니 이름 있는 비싼 제품이었다. 돈벌이도 하지 않는 학생 주머니에서 지출하긴 센 가격이었다.


준비물은 완료 이제 수영장에 갈 일만 남았다. 남자 뚱뚱보 셋에 여자 뚱보 한 명 살 빼기 겸 건강 다이어트 프로그램으로 아쿠아로빅을 가는 것이다. 9개월간 계속될 것이니까 이참에 더불어 건강을 좀 챙겨볼까 욕심도 내어본다.


드디어 두근두근 그날이 왔다.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택시 한 대로는 갈 수 없으니 두대가 동원되어야 했다. 한눈에 관리가 안되니 신경 쓰이지만 그래도 남자 세 명이 잘 따라주었다.


짜자잔,

기대하고 고대하던 대망의 수영장 입장.

속으로 팡파르 울리며 들어간 첫날!

탈의실 입장과 동시에 등골이 서늘해지며 이런 내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아 당장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맘대로 온 것도 아니고 내 맘대로 갈 수도 없었다.


남탕으로 간 세명의 친구들과 홍일점으로 당첨된 정아가 옆에 딱 붙어 있는데 어쩌냐 속마음을 꾹꾹 누르며 샤워실로 향했다.


온몸을 씻고 또 씻고 또 씻고 깨끗이 더 깨끗이 씻었지만 차마 수영복 입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벌거벗은 몸보다 더 부끄럽고 창피할 것 같았으니까!


수증기가 가득한 샤워실 안에는 대부분 연세가 있는 분들이었지만 앞가슴이 확 파지고 허벅지가 허옇게 다 나온 수영복을 입었다.


어쩌지! 나는 어떤가 검정이 살짝 섞인 초록 바탕에 대형 해바라기 꽃이 활짝 핀 화려한 노란색에 치맛자락까지 찰랑거리며 외출을 해도 밉지 않을 만큼 정숙한 원피스형 수영복이 아니던가! 그런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아무도 아무도 없었다. 이건 정녕 수영복이 아니었단 말인가!


어쩔 수 없이 입긴 했지만 샤워실 안에서 민 그적 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부끄러워서 나갈 수가 없었다. 남탕으로 간 세 친구들은 잘 챙겨 입고 나왔는지 신경은 쓰이지만 그냥 믿어 보기로 했다.


“국민체조 시작” 구령 소리가 천장을 때리며 크게 울려 퍼졌다. 그때사 어쩔 수 없이 수영장 입구로 들어갔다. 수영장 둘레에는 흡사 까마귀 떼들이 모여서 날갯짓하는 것처럼 거의 다 검은 계열의 수영복을 입고 체조를 했다.


하여간 검은색 흰색을 떠나 나처럼 희한한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끄러웠다. 처음이라 어색하기도 한데 수영복조차 때와 장소에 맞지 않은 걸 입은 것 같아서 태연한 척 서 있었지만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새까만 까마귀 떼들 가운데 외롭게 피어난 한송이 해바라기 꽃!


체조가 끝나자 까만 사람들이 까마귀 때처럼 우르르 물속으로 풍덩풍덩 잘도 빠져들었다. 이 어르신들도 잘도 들어가는데 우리도 가보자 싶어서 뒤를 따라 들어가는데 발이 미끄덩하면서 물이 코까지 확 올라왔다.


순간 코끼리처럼 푸우하며 고개를 쳐들며 엄마야, 나 죽어. 또 물에 빠져 죽는가 싶어서 깜짝 놀랐다. 귓구멍 마개를 콧구멍에 막았어야 했나 싶었다. 매운 코를 훌쩍거리며 물에 빠졌던 트라우마가 또다시 살아났다.


옆에서 보고 있던 어르신이 우리 자린데

“젊은이들이 여기 왜 왔데?”

“여기는 물이 깊어 저쪽으로 가”

그래서 네 명을 앞세우고 뒤뚱거리며 저쪽으로 가는데 치마가 가관이다.


물 만난 치맛자락은 물 위에 쫙 펴져서 자기가 튜브 인양 팔랑거리고, 초보인 우리는 설자리도 찾지 못해 허우적거리는데 잘 생긴 남자 강사님은 힘차게 구령을 외치며 운동을 시작했다.

수십 명의 회원들은 출렁출렁 잘도 따라 했다. 초짜라고 특별히 봐주거나 지도해 주는 것도 없고 우리는 한쪽 구석에서 출렁거리는 물살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중심 잡기도 힘들었다.


맨땅에서도 뒤뚱거리는 우리 친구들 첫날부터 중심 잡고 잘하길 바라면 오산이지만 눈치껏 따라 하는 척하며 우리는 물과 친해지는 것이 더 중요했다.


허우적거리더라도 한 시간은 물속에서 놀아야 되는데 치맛자락은 자꾸 떠오르고 누가 볼까 봐 민망해서 치맛자락을 잡아 앞뒤로 묶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양다리 사이에서 소불알처럼 덜렁거리며 부딪치고 양옆에는 물이 차서 개구리 볼태기처럼 볼록볼록 무거웠다.


물에 빠져 죽을까 봐 간 졸이며 살아남느라 한 달 쓸 에너지 다 쏟아부은 것처럼 지치고 힘들었다. 사실은 마음이 더 힘들었다


오늘 하루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거의 반나체들을 숱하게 구경했다. 그런데 초미니 삼각으로 거시기만 가린 남자들은 보기가 좀 민망했다. 젊은이들은 사각이던 삼각이던 예쁘게 봐줄 수도 있지만 나이 살이나 든 아저씨들이 그러고 있으면 정말 보는 사람이 오히려 더 민망스러웠다.


차라리 쫙 붙는 사각이 더 멋있지 않을까 싶었다. 또 더 웃기는 것은 바캉스 가서나 입을만한 핫바지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은 분명 나 같은 초보라는 것이 수영장 간지 하루 만에 다 파악되었다.


수영장 하루 가고 느낀 것은 그래 맞다 벗을 땐 화끈하게 벗어야 되고 놀 땐 화끈하게 놀고 일할 땐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거야. 이도 저도 아니고 미지근하게 부끄러워 어쩌고 하느라 이 꼴 난 거 아냐. 자신을 타박했다.


할머니들도 과감하게 다 드러내 놓고 오셨잖아! 이 바보야! 나오다 보니 수영장 입구에 수영복 매장이 있었다. 애라 모르겠다 최신형으로 당장 대체 해 버렸다. 이러면 될걸! 가슴이 파지던 허벅지가 나오던 다른 사람들처럼 어깨 펴고 당당하게 수영장 들어갈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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