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르륵 맥주병이 수영장을 가다(2)

행복의 기준이 있나요(코로나 전 이야기)

by 수국

쌀쌀한 날씨가 겨울 맛을 제대로 내는 날이다. 늘 시간에 쫓겨 다니다 보니 몸 따뜻이 데워 볼 시간도 없이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으니 그렇게 춥게 느껴지곤 했는데 오늘은 여유롭게 몸이라도 한번 데워볼까 생각하고 늘 복잡하던 조그마한 온탕을 들여다본다.


웬걸 사람이 없다. 탕 안의 물을 다 빼내고 새로 물을 채우는 중이었다. 옳다구나 오늘은 물도 새로 받았겠다 시간도 있고 나도 한번 들어가 보리라 마음먹고 있는데 그새 물은 어느 정도 받아졌고 하나둘 순식간에 조그만 온탕에는 사람이 가득이다.


“여자들은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뜬다”더니 정말이지 수다가 장난이 아니다. 시끌벅적하다. 아줌마 한 사람 한 사람 더 보탤 때마다 물은 출렁출렁 밖으로 넘쳐흘렀다. 탕 안에는 물 반 사람반이다. 어쩜 물보다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수영장 규모에 비해서 온탕은 정말 조그맣다. 두 평이나 될까? 흐르는 물가에라도 앉아볼까 하고 가서는 애라 모르겠다. 염치 불고하고 나도 한몫 끼어 본다. 한가운데 비집고 들어가 앉으니 입에 물이 들어갈 판이다.


물이 가만히만 있으면 간당간당 올랑촐랑 거리며 견디겠건만 아줌마 한 사람이라도 넓적한 엉덩이를 들고 벌떡 일어설 때면 출렁이는 물이 입에 들어오기 딱 맞는 수준이다.


입술을 야물게 닫고 물이 안정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 아줌마들 느긋하게 좀 앉아 있으면 좋으련만 한 명 나가면 또 들어오고 작은 탕 안의 물살이 잔잔할 시간이 없다.


그래도 어매 따뜻한 것 오늘 같은 날씨엔 뜨거운 물에 몸을 풀고 나니 그래도 좀 개운하다. 언제나 바라보기만 했는데 오늘은 제대로 온탕을 즐겼다.


수영장을 다닌 지 8개월째 처음으로 들어가 본 온탕이다. 역시나 온탕이 좋구먼.

첫날부터 쇼 아닌 쇼를 하며 시작한 아쿠아로빅 이제 아쉽지만 한 달 남았으니 온탕이나 맘껏 즐겨볼까 생각도 해본다.


수영장 다니시는 품위 있고 예쁜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 때 밀지 말라면 퍼질러 앉아서 때 밀고 간단한 요구르트 마사지 정도는 애교로 봐주지만


"음식 반입금지, 고객님 부탁합니다"라고 벽마다 크게 써 붙여놓아도 안내문은 안내 일뿐 소용이 없다.


삶은 고구마 찜질방까지 들고 들어오는 어머니들 탈의실에는 아예 떡판 벌리는 어머니들은 공식화되어있고 감주 통을 들고 건더기 퍼먹는 어머니 등등


하하호호 낮시간의 여유를 즐기는 모둠마다 먹을 것이 빠지면 섭섭하겠지. 한참 운동하고 나왔으니 배고프고 입맛이 당길 만도 하지.


관리자는 연신 걸레로 닦고 다니는 중이고 하기사 어머니들이야 떼를 지어 다니면서 운동도 하고 수다도 떨고 먹고 마시고 그러는 재미로 삼삼오오 다니는 거겠지.


오늘 한 할머니는 선 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둘 다 맘에 있어서 결혼하려고 했는데 성사되지 못하고 아쉽게 깨져버린 이야기.


맘에는 없었지만 기술자라는 이유로 밥 안 굶기고 배부른 게 낫다고 오라버님의 강력한 권유에 결혼을 하긴 했는데 살면서도


"그 남자 생각이 더 나더라"며 마음에도 없었던 엉뚱한 남자와 살아온 한만은 이야기를 끝도 없이 풀어놓으셨다.


신혼시절 시어머니 시누이 등등 일곱 식구가 단칸방에서 함께 지내며 불편하기 짝이 없더라는 이야기.


"여자 맛을 안 서방은 더듬이 짓을 하고 둘이 실랑이 벌이다 보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결국은 자기가 졌다."며


"2~3년 그러고 살다 보니 남자 정이 뚝 떨어지더라"며 하소연 한판 벌리는 입담 좋은 할머니.


"신혼 방 차릴 능력도 안 되면서 장가가려고 한 서방 놈"이나


결혼하면 따로 방내 주겠다고 해놓고 그럴 능력도 안 되면서


“거짓말한 시어미나 다 똑같더라"라고


이미 수 십 년 지난 이야기를 온 사람이 다 듣도록 큰소리로 넋두리하는 할머니의 건강한 목소리에 소리 없이 웃음이 나왔다.


이야기 꽃이 한창 피어나는 할머니들 말잔치엔 서방 시어미는 꼭 등장한다. 시누이까지 등장하면 이야기는 더 길어진다.


"서방이 소여물 칸에도 따라오고 오다가다 어른들 눈피해가며 어쩌다 그 짓을 했는데도 애가 생기더라”며


“에휴! 예전에는 그러고도 살았어 어휴!”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식 낳아 키워 온 인생 대 선배 어른들 이야기가 그 당시의 현실을 말해주었다.


어르신들 흔히 하시는 말씀이 그때는 먹을 것도 없어서 식구들 챙기다 보면

"물로 배 채우며 밥도 많이 굶었어." 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라면 끓여 먹으면 되지 굶기는 왜 굶어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고 그냥 웃고 넘기지만 그런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어른들의 이야기가 수영장에서도 출렁이는 물결처럼 흘러나왔다.


하여간 어릴 때 바닷물에서 헤엄쳐 보겠다고 깝죽거리다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죽을 뻔한 후로 지금까지 물 깊이 들어 가본 적이 없었다.


물을 제일 무서워하는 내가 무슨 복에 출렁거리는 물속에서 코가 빠지도록 온 몸을 담그고 신식 수영복을 입고 이 호강을 다 하나 좋은 시대를 살고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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