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이야기(말이란)
돈 만원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가 있는지 일찍이 생활 속에서 체험한 적이 있었다. 서로가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이 공통분모가 되어 가정을 이루었으니 더하나 곱하나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고, 나누고 뺄 것은 더더욱 없는 것이 우리의 시작이었다. 없어도 없다는 소리 못하고 참고 사는 게 미덕인 줄 알았던 수줍음 많았던 새댁 시절.
마른땅에 발을 딛고 서 있어도 속은 울렁거리고 병든 병아리처럼 꼬박꼬박 졸기도 하면서 무슨 병인지 알 수 없는 이상증세로 혼자 고민하며 궁상스럽게 살고 있을 그때. 우리 형님은 차마 그냥 발길을 돌릴 수 없었던지 내 손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살며시 쥐어 주고는 가셨다. 시작부터가 궁색한 만남이어서 여유롭지 못했던 터라 돈 만원에 힘을 얻어 시장으로 뛰어 나갔다.
내가 살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시장 초입부터 끝까지 한 바퀴 휙 돌아보았다. 쌀가게에서 쌀 한 되를 사고 이것저것 반찬거리와 부추도 한단 사 왔다. 밀가루 식용유는 이미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은 오로지 부추전이었으니까!
정오를 조금 지난 늦은 점심시간 연탄아궁이 불문을 확 열고 불꽃이 하나 둘 뿅뿅 피어오르기 시작할 때쯤 쇠뚜껑도 열었다. 연탄 불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기름도 두르고 잘 씻은 부추 한 줌을 밀가루 반죽에 푹 적셔 프라이팬 위에 길이대로 길게 눕혔다. 지지직 소리와 함께 프라이팬이 꽉 차도록 얇게 펴고 정성스럽게 힘을 다해 꼭꼭 눌러 맛있는 전이 되기까지 손끝의 뜨거움 정도는 참아야 했다.
지글지글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진 부추 전 한 장으론 힘들게 문지방을 넘을 필요가 없었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 자리에서 쭉쭉 찢고 돌돌 말아가며 맛있게도 먹었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으로 후딱 먹어 치웠다. 수고도 하지 않고 얻어진 돈 만원으로 행복했던 그 순간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 돈 만원은 그래도 꽤나 가치가 있었던 때였다.
그 맛있던 부추 전을 태중에서 얻어먹으며 자란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갈 무렵 거친 풍파에 휘말린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속앓이 하고 있을 바엔 차라리 뭐라도 하자 싶어서 일어났다. 친구가 운영하는 조그만 식당에서 바쁜 점심시간에만 노동력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그 노동의 대가로 받은 돈 만원을 손에 쥐고 촉촉이 젖은 땀을 식히며 이 돈 만원으로 뭘 하면 좋을까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을 정도로 나갈 곳은 대기 중이었지만 그래도 만원의 소중함과 만원의 행복을 다시 한번 체험해 보는 절실한 때가 있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아들은 스스로 밥벌이하는 성인이 되었고 이제는 돈 만원이 아쉬워 일하러 가야 될 만큼 절실한 상황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한 몸 어디서라도 필요로 한다면 즐거이 임하리이다 하는 자세는 변함이 없다.
‘일하면서 느끼는 같은 돈 다른 느낌’
“우리 아들은 바빠서 올 시간이 없어” 아들이 보고 싶으면 하시는 어르신의 말씀이다. 아들이 방문하면 언제나 “바쁜데 어째 왔니” 하시며 반가워하시는 어르신. “나는 잘 먹고 잘 있다 걱정 말고 가라” 헤어질 땐 늘 그러셨다. 아들이 뭐 하세요? “우리 아들 병원에서 퇴직하고 요새는 학교에 나가는 교수다 바빠” 어느 학교 무슨 강의 그런 건 궁금하지 않았다.
어버이날 어르신을 모시고 외출한다기에 외출 준비를 해드렸다. 문을 나가려던 보호자 교수님! 뒤돌아서며 폰 틈새에서 야무지게도 꼭꼭 접힌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주시며 “차 한 잔 하세요.”라고 했다.
아닙니다. 극구 사양하며 피하려고 했지만
“전에부터 드리고 싶었다.”라며
돈을 그냥 물품 대 위에 던져 놓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시고”라는
말도 같이 던지고 가셨다.
더 이상 ‘아닙니다 아니에요.’ 시끄럽게 떠들 수도 없고 별로 달갑지 않은 꼭꼭 접힌 돈 만원을 앞에 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다. 그냥 차 한잔 하세요.로 끝났으면 그렇게 알고 고맙게 받으면 될걸. 찜찜하고 묘한 이 기분은 또 뭘까.
그 순간의 기분을 솔직하게 말하면
첫째는 당연히 내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럴 이유가 없다는 미안함과
둘째는 돈 만 원짜리 하나 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는 조건부 생색내기가 맘에 들지 않았다.
셋째로는 교수님께서 딸랑 돈 만원이라 좀 시시하지 않니? 순도 99.9%의 순수한 감정이 아니라 불순물이 섞인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던 것이다.
왜 이러지 많이 변했네.
돈을 주워 주머니에 접어진 채로 그냥 넣어 두고는 펴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 돈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차를 꼴 딱 꼴 딱 마시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손을 넣을 때마다 부딪치는 그 돈은 왠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얻어진 공돈인데 고마움보다는 찜찜했다.
사탕 한 알에도 고마워하고, 자판기 커피 한잔에도 감사할 수 있는데, 유독 그 교수님의 그 돈은 왜 감사합니다. 보다는 찜찜합니다였을까 나도 모르게 기분이 그랬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돈의 가치라고 해야 할지, 내 생각이 잘 못되었다고 해야 할지, 어떤 이유가 되었던 차 한 잔을 대접하고 싶었던 그 마음은 고맙게 받자. 스스로 마음 달래는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는 그 말이 귓가에 맴돌며 그 말만 하지 않았어도 차라리 선생님들과 차 한잔 하세요.라고 했더라면 더 좋았을 걸. 물론 새겨듣고 그렇게 행동하면 되지만 듣는 순간 말이란 참 묘했다. 선을 긋는 듯한 하여간 산뜻한 기분은 아니었다.
오래전 그 만원의 행복과 착착 접힌 현재의 만원 한 장은 왜 이렇게 다른 느낌이었는지. 활짝 웃으며 차 한 잔을 나눠 마실 때까지 그 돈 만원은 구석진 주머니 속에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