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을 서시오

일상생활 이야기

by 수국


“칠월 팔일 햇 멸치 판매 예정” 이란 문구가 농협 유리창에 대문짝 만하게 붙었다. 칠월 팔일이라 음 그러면 아직 며칠 남았군 잘 기억했다 한번 가 봐야지 대단한 멸치를 구입하려는 듯 그날을 잊지 않으려고 건망증 사이로 애써 기억하며 기다렸다.


건망증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너무도 잘 잊어 먹기에 며칠 후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

햇 멸치 오는 날을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저렇게도 많았단 말입니까?

농협 직원들이 출근도 하지 않은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한 어머님들의 줄 서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작년에는 막판에 들렸다가 좋은 것은 없었고 대충 한 박스 사 왔던 기억이 나면서 올해는 일찍 가서 좋은 것 한 박스 기필코 사리라. 마음먹었지만 내 맘을 뭉개는 저 긴 줄 끝에 어딘가 내게 돌아올 멸치가 남아 있으려나.


뭐 공짜로 준다거나 아주 값싸게 판다면 줄 서는 건 봤어도 멸치 사려고 저렇게 장사진을 이룰 줄은 예상 밖이었다. 일을 하다 말고 깜짝 생각이 나서 이제 어느 정도 다 사갔겠지 하고 점심때쯤 정오의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농협 앞으로 갔다.

어머 세상에 못 말리는 우리 어머님들의 열정, 아직도 줄 서기는 진행 중이었다.

얼마나 좋은 멸치이기에 저렇게 땡볕에서 땀을 흘리며 줄 서기를 하실까!


무작정 줄 서서 기다릴 열정은 없고 제일 앞으로 가 보았다. 줄을 설 것인가 말 것인가 멸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멸치 만오 천 원, 아주 잔 멸치 이만 오천 원, 삼 만원, 선호도가 높은 중간 멸치 요런 것은 이미 보이지도 않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다. 원하는 크기도 없거니와 특별히 맘에 끌리는 것이 없었다. 다른데 보다 가격이 저렴한가? 시세를 모르니 감 잡을 수도 없었다.


싸다 비싸다 좋다 나쁘다 판단할 필요도 없이 농협에서 판다니 국내산이라고 믿고 그러실까 해마다 하는 연례행사이니 우리 농협 좋은 농협 이렇게 믿는 것 같았다. 멸치는 구경도 하지 않고 오는 순서대로 순순히 줄 서기를 하는 우리 어머님들의 그 모습이 참 신기했다. 앞에서 구경하던 한 어머니가 새치기를 하려 했는지 맨 앞줄에 서있던 어머니가 벼락 치듯

“아지매 거서 사면 안 돼요”

“줄을 서야지요”

“달이들 다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 와서 그라면 되는 강”

다른 어머니들도 같이 웅성웅성 시끄러워졌다.


“그래요 그래야지요”

“다들 줄 서서 기다리는데 줄을 서야지요.”

그 어머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몰매 맞을 상황이었다.

그 어머니 순순히 줄 서서 멸치를 사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앞에서 새치기 못하도록 지키고 안 있나.”하며 은근히 감시하는 분들도 계셨고

농협 직원들은 멸치 박스들이 술술 줄어드는 것을 보며 즐겁게 땀 흘리고 있었다.


“줄을 서시오” 예. 하며 그렇게 기다릴 시간도 없거니와 마음에 드는 물건도 없고 금방 휘익 둘러보고 뒤돌아서 오면서 칼슘 보충은 다시 생각해 봐야겠지만 멸치 사러 온 저 어머님들은 믿음이 있기에 이 무더위에 땀을 흘리며 제품도 보지 않고 저렇게 줄 서기를 하는 것이겠지 그나마 믿고 사는 좋은 관경을 본 것 같아서 멸치 구매는 포기했어도 기분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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