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만 너무도 비슷한 두 분

편안한 노후를 기대하며

by 수국


지하철 1호선에서 할머니 두 분을 만났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중 앞서 내려간 할머니 한분이 끝 지점에서 “으으”하며 쓰러졌다. 무거운 장바구니는 에스컬레이터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먼저 내린 청년이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아 보며 넘어진 할머니 손을 잡고 일으켜 드렸다. 청년이 무거운 장바구니도 빨리 옮겼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에스컬레이터였지만 바로 뒤따르는 사람이 없었기에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참 다행이다.


통로 옆에 빵빵한 손수레 장바구니와 울퉁불퉁한 대형 봉지 하나를 내려놓으며 후유, "값싸다고 사과를 샀더니 이 난리다"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덮게까지 꽁꽁 덮어진 장바구니엔 뭐가 들었는지 할머니는 힘에 버겁게 양손 가득 장을 보았다. 젊은이라도 만만치 않을 짐이다.


중년 남자 두 분이 “이 쪽으로 가는 게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면서 주춤하고 있을 때 잠시 허리 펴며 쉬는가 싶던 할머니는 “아저씨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이것 좀 들어주세요." 할머니는 말을 걸었고 남자 두 사람은 무거운 사과 봉지를 마주 들었다. 서로 이야기 나누며 잘 알던 이웃처럼 세 명이 나란히 걸었다. 각자 필요를 위해 서로 돕는 그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낮 시간이지만 지하철 안은 복잡했다. 좌석 끝자리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분은 “들어오면 안으로 들어가지 다른 사람 생각은 안 하고 출입구에만 서 있다"라고 짜증을 냈다. 사실 안쪽에도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냥 모른 척 좀 가시면 될 텐데 왜 저러실까. 어디서부터 짜증이 났는지 그 할머니는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다.


출입구에 선 것도 얄미운 판에 큰 소리로 대화하던 중년 남녀 두 사람이 할머니에게 딱 걸렸다. 할머니는 눈을 올렸다 내렸다 시끄럽다고 혼자 중얼중얼하시더니 더 이상은 못 견디겠는지 "지하철 안에서 좀 조용히 합시다." 벼락같이 고함쳤다.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어 모두 조용했다.


잠시 후 중년 남녀 두 사람은 여전히 대화를 이어갔고 몇 정류장을 더 가더니 내렸다. 화가 풀리지 않은 할머니는 “머리도 허연 남자가 뭔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하며 그들 뒤통수에다 한마디 더 붙이셨다.

“머리가 허연 남자”라고 한 번 더 콕 찍어 말했던 그 의미가 뭔지? 사람들이 많다 보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만 할머니도 좀 예민하셨고 그 두 사람의 목소리도 크기는 했다.


다음 역에서 탄 젊은 남자는 바로 그 할머니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그때 마침 전화벨이 울렸고 그 남자는 계속 통화를 하고 있었다. 시끄러운 것 싫어하시는 할머니 앞에서 잘못하면 이 남자에게 또 불똥이 튀겠구나 싶었는데 어쩐지 할머니가 오랫동안 묵묵히 참아 주었다. 아, 다행이다. 사람 봐가며 역정 내시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짜증 내며 큰소리쳐도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던 예민한 할머니나 가족들을 위하고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려고 과하게 힘쓰시던 할머니나 지금까지 "내 손이 내 딸"이라고 내 몸으로 모든 일 다 하시며 치열하게 살아오셨을 것 같은 비슷한 연세에 다르지만 너무 비슷한 이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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