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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May 06. 2023

인사와 대화


 

 인터폰이 ‘띵동 띵동’ 요란스럽게 울린다. 물 묻은 손을 바쁘게 닦으며 통화를 누르고 누구세요? 물었다. “네 고객님.” 하고 끝이다. 뭐지? 이 대답. 맘에 들진 않았지만 문 열림을 눌렀다. 누구냐고 물었는데 네, 고객님이라니. 대답은 짧았다. 잠시 후 다시 인터폰이 울린다. 뻔한 대답 두 번 듣고 싶지 않아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양손에 정수기 점검 도구들을 들고 들어서는 그녀는 보통 키에 머리는 단정하게 걷어 올렸다. “손 씻고 점검할게요. 오늘은 중금속 필터 교체합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말이 짧았던 그녀에게 말을 더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수고가 많으십니다. 인사를 건넸다. “네 힘들어요." 그래도 일할 수 있을 때가 좋지요? “맞아요, 이 나이에 일 시켜주니 고맙지요.” 한다. 이 나이란 몇 살을 말하는지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이 나이라고 힘주어 말했으니 젊은이가 아니란 걸 시인한 것이다.

     

 전문직, 기술직, 자영업이 아니라면 나이 든 어머니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요? 그녀는 나중에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할 거라고 했다. ‘호스피스 병동' 쉽지 않을 텐데요. 성격 나름이지만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에 감정 이입되면 기가 빠지고 더 힘들 수도 있을 텐데. 그랬더니 “어떻게 잘 아세요. 의료계에 근무했어요?” 그러면서 마지막 가는 분들에게 봉사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럴 계획이라고 했다. 미래 계획까지 세우고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봉사할 마음이 있다면 좋은 생각이라고 경험해 보라고 응원했다.   

   

 그녀의 전직은 논술교사였으며 정수기 필터 교체 및 관리하는 일을 한 지는 3년 됐다고 했다. 논술교사와 정수기 관리는 완전 다른 업종이라 바꾸게 된 과정이 궁금했다. 늦은 시간까지 학생들 가르치기 쉽지 않았어요. 남들 보기엔 그럴 듯 좋아 보이지만 기가 다 빠지고 수고한 만큼 수입도 따라주지 않았다고 했다. 논술교사로 최고 250만 원까지 받았지만 정수기 일하면서 420만 원까지도 받았으니 수입은 괜찮은데 힘들어서 이 일도 할까 말까. 번아웃이라고 했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다 보면 힘 빠지게 하는 사람이 많은데 "고객님은 제게 힘이 됩니다. 힘 나게 해 주셔서 고마워요." 한다. 내가 뭘 했다고. 이야기 들어줬을 뿐인데. 계속 받아 주고 있으면 언제 끝날지 모를 정도로 할 말도 많았다.  

    

 15분이면 점검 끝난다더니 이야기에 빠져서 30분 안에 모든 일이 끝나고 마무리될는지 의심스러웠다. 인사치레로 시작한 대화가 그 짧은 시간에도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그녀보다 내가 더 바쁘니 대화를 끝내고 먼저 자리를 옮겨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말도 많은 사람이 누구세요? 물었을 때는 ‘네 고객님 정수기 점검하러 왔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대답은 왜 못 했을까. 첫 번째 고객이나 마지막 고객이나 다 처음 만남인데. 고객과의 좋은 만남을 생각한다면 그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루에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힘들겠지만 그래도 직업인데 어쩌겠는가.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의 기본은 친절한 말 한마디부터 시작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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