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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May 23. 2023

김밥도 유전인가


강산이   변한 옛날이야기다. "우리 엄마는 아침마다 참기름 냄새 솔솔 나는 김밥을 해줬는데" 엄마의 김밥을 잊지 못해 밥투정하는 남편. 식성부터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사람의 합의점 찾기는 쉽지 않았다. 자연산 돌김은 내가 더 많이 먹어봤지만 속살이 화려한 김밥에 대한 추억은 없다. 엄마의 김밥을 노래하더니 "뜨거운 밥에 간장과 참기름 넣고 비벼 먹으면 맛있는데" 어른 아이의 입맛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김밥이란 초보 주부에게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누구에겐 맛있는 김밥이 오르지 못할 산처럼 어렵게만 느껴졌다. 우리 엄마는  김밥을  번도 해주지 않았을까. 가마솥밥은 잘할  있어도 김밥은 모른다.  엄마를 탓하다가도 입맛 까다로운 아들로 키운 시어머니를 탓하며   어머니 탓으로 돌린다.


김밥을 들먹거리는 남편 앞에서는 배배 꼬인 꽈배기처럼 주눅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의 밥투정은 면역이 생겨 버틸 수 있었지만  자식은 그럴  없었다. 어린아이  한술  먹이기 위해 역시 김이 필요했다.  장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밥한술 돌돌 말아 한입이라도 더 먹이려 애썼. 아이가 자라감에 따라 김밥도 굵어지고 엄마의 솜씨도 같이 자랐다.


아들을 별나게 키웠다고 시어머니 탓했더니 내 아이를 키우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입맛 까다로운 아들을 위해 아침마다 김밥을 말아야 했던 그 고충과 정성은 엄마니까 가능했다.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것이었다. 유독 김밥을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들 덕분에 없는 솜씨 발휘하며 굵고 매끈한 김밥을 돌돌 말아내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살다 보니 넘지 못할  같았던 김밥으로 밥벌이까지 했다. 생각지도 못한 꿈같은 현실이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에게 길은 열렸다. 병원매점에 김밥 도시락을 납품하는 일이었다. 매일 새벽 오색찬란한 김밥을 정성 들여 말았다.  말아진 김밥이 삼각산을 이루면 하나하나 참기름을 발랐다. 우리  아침공기는 참기름 향기로 가득했다. 김밥  줄을 도마 위에 놓고 일정하게 쓸어 도시락에 담고 통깨를 솔솔 뿌려 뚜껑을 닫으면 완성이었다. 매점 여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려야 했고 아침시간은  바쁘고 정신없었다. 뒷정리하고 내일을 위해 재료확인과 장보기  어제와 오늘이 다를  없는 일상이었다. 주문량이 많아지면 그만큼 일도 많고 손도 바빠졌다. 매일 새벽 김밥 오십    정도는 우습게 말아내었다     

 

인생이 배배 꼬이는 듯 부담스러웠던 김밥으로 실제 꼬인 삶을 풀어간다는 것이 의외였다. 인생이란 다 그런 걸까. 참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았다. 새벽부터 김밥에 묻혀 살다 보니 식구들 아침 식사는 역시나 김밥이 제일 쉬웠다. 참기름 냄새 솔솔 나는 김밥 타령하던 남편도 제발 김밥 그만 먹었으면 하는 눈치였고 아이들도 아침마다 똑같은 메뉴를 좋아할 리 없었다. 손이 열개라도 바쁜 시간에 다른 것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다.


한때는 우리의 밥줄이었던 김밥에 온 가족이 질려버렸다. 매일 보고 매일 먹었으니 아무리 좋아하는 식성이라도 질릴 만도 하지. 우리 손주들은 김밥을 좋아할까 싫어할까. 그것이 궁금했다. 요즘 애들도 별 수 없었다. 밥 먹기 시작하면 구운 김에 밥 한술 돌돌 말아 먹이는 과정을 거친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반찬도 잘게 다져 김밥 속에 숨기면 모르고도 먹고 알고도 먹게 된다. 아이들에게 밥 먹이는 방법으로 김밥을 제외할 수 없다.

     

입맛도 대를 이어 유전되는가. 웃어른들이 질리도록 먹은 김밥을 손자 손녀도 “ 맛있다.”   반짝이며 반긴다. 아버지와 아들, , 손자, 손녀까지 삼대가 김밥을 좋아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먹을  넘쳐나는 세상에 꼬마들까지 김밥을 무시할  없는 별난 가족이다. 아들이 솜씨 발휘하여 다이어트 김밥을 쌌다고    ‘오호 김밥  쌌는데솜씨 좋은데 그랬더니 “ 누구 아들인데.” 엄마보다 낫다. 엄마는  나이  김밥 앞에 주눅 들어 몸과 맘을 배배 틀며 꽈배기처럼 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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