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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May 30. 2023

젊음은 바로 지금부터

어버이 날을 보낸 소감


어버이날 특별 체험을 했다. 아들이 예약해 둔 은화실을 찾아 가느라 한참을 헤맸다. 주소만 있으면 전국 어디라도 잘 찾아다녔던 남편과 함께라 걱정도 안 했다. 서진로 47번 길 25. 은화실 찾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2층이라는 말만 믿고 당연히 간판이 달려있겠지 생각하고 2층을 바라보며 걸었다.


신축건물과 옛날 집들이 섞여 있는 동네였다. 25번지는 오래된 상가 건물이었다. 건물을 찾아 놓고도 화실과 출입구가 어딘지 두리번거렸다. 한참을 망설이다 정문은 아닌 것 같은데 좁은 통로로 들어갔다. 일찍 나섰는데도 예약시간은 다 되어가고 마음속은 흔들어 놓은 탄산수처럼 보글보글 끓었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어렵게 찾아간 은화실. 온화하고 예쁜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화실 찾아오는데 헤맸다니까. “찾기 힘들죠. 걱정되어서 나가볼까 했어요.” 말이라도 고마웠다. “토씨 끼고 앞치마 입고 여기에 앉으세요.” 선생님 말씀대로 착하게 이젤 앞에 앉았다.


처음 보는 그림도구들이 특이했다. 여러 종류의 칼과 물감통들이 줄지어 있었다. 우리가 가져간 이미지 사진을 보더니 “나이프페인팅”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신청은 ‘백드롭페인팅’이라고 했는데 실전은 나이프페인팅. 차이가 뭐냐고 물어봤다. 도구나 재료는 같지만 표현하는 기법이 약간 다르다고 했다. 그림을 모르는 초보가 볼 때 거칠고 매끈함의 차이가 느껴졌다. 일반도로와 요철 부분의 느낌이라고 할까.


부모님만 갈 거라고 해서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걱정했다며 나이프 사용하는 방법, 물감 섞어 원하는 색 만들기, 칠하는 방법. 기초적인 설명이 끝나자 우리는 겁 없이 나이프를 들었다. 중간중간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작품에 집중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처음인데 잘하시네요.” 식빵에 잼이나 버터 바르듯이 나이프에 물감을 떠서 천으로 된 액자에 색을 입히는 그림 그리기. 재미있었다.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원본 사진을 흉내 냈지만 첫 작품 치고는 괜찮은 성과였다.


백드롭페인팅 “환불도 안된다.”는 소리에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간 남편은 손놀림이 빨랐고 세밀하게 표현하려 애쓰는 모습이 의외였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별짓을 다 하게 한다.” 불평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림에 진심이었다. 예술적 감각이 숨겨져 있었을까. 작품도 나보다 더 잘 나왔다. 그림에 대해선 모르지만 번지지 않으니까 수채화 보다 쉽게 할 수 있었다.


끝나고 나오면서 보니 우리가 지나쳤던 입구에 간판이 여러 개 세워져 있었다. 그중에 하나 EUNWHASIL이란 앉은뱅이 의자 크기의 입간판이 땅바닥에 있었다. 화려한 색깔도 아니고 흰 바탕에 검은 글씨.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던 간판이라 위를 보고 걸었던 우리가 못 찾는 게 당연했다.


눈에 잘 띄는 ‘은화실’ 도 아니고 알고 봐도 어색한 영어 대문자로 쓰인 간판이었다. 영어로 쓰면 더 품위 있어 보이는지 한글은 뒷전이었다. 우리 한글을 최고로 사랑하는 나는 그 간판 달갑지 않았다. 2층에 간판이 있을 거라 생각한 고정관념을 뒤집고 돌려 생각하고 좌뇌 우뇌를 골고루 쓸 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백드롭페인팅에서 나이프페인팅으로 기법을 바꾸어 잘하고 왔다니까 아들이 저녁에는 고기 구워 먹을까요? 했다. 좋지 고마워. 마음에 있어 베푸는 선의를 거부할 필요는 없었다. 어버이날 건배사를 다섯 살 손녀가 하겠다고 했다. 온 식구가 물컵과 술잔을 들었다. 무슨 소리를 할까. 귀 기울여 들었지만 뭐라고 길게 말했는데 잘 못 알아 들어서 다시 물었다.


통역관 엄마가 하는 말 “젊음은 바로 지금부터 청바지” 그렇게 말했단다. 다섯 살 아이가 젊음을 이야기하니 너무 웃겨서 또 한바탕 웃었다. 어디서 배웠냐니까 “아빠가 가르쳐줬다.”라고 했다. 어린아이에게 별 걸 다 가르친다. 손녀의 건배사처럼 어버이들의 젊음을 응원하며 젊음은 바로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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