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슥한 밤은 싫지만
“낮에는 전등 절반만 켜도 되겠지요.” 스위치를 하나 끄고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나가는 원장의 뒷모습이 못마땅하다. 햇살이 속속 들어오지 않는 1층이라 침침하고 답답하다. 이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스윗치를 팍 팍 켜버린다.
화사한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든 어르신들이 계신 곳이다. 전등 불빛이라도 밝아야 눈앞도 훤해지고 마음도 밝아진다. 절약도 중요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환하고 밝은 것을 좋아하니 어두움은 별로다.
모두가 숙면을 취하며 쉬어가는 밤에 근무를 한다는 건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니다. 4일 동안 쉬고 왔으니 느슨해진 마음을 끌어당기며 제발 오늘 밤엔 모두 평안하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근무에 임한다.
어르신들과 춤을 추듯 인사를 나누고 낮 근무자와 업무 교대 인수인계를 받는다. 영 찜찜하고 두려운 업무 교대다. “요 며칠 일이 많았다.” 면서 이런저런 전달 사항이 많다. “오늘 밤을 잘 넘길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고개를 저으며 인수인계를 끝내고 “난 퇴근하련다 수고해” 교대 근무자는 퇴근을 한다.
하루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그 모습이 왜 그렇게도 부럽고 끌어당기고 싶을 만큼 아쉬움이 많은지. 잘 쉬고 왔으면서 하루 종일 수고하고 가는 사람을 잡으려 하다니 소용없는 일이다. 어차피 주사위는 내게 던져졌고 이 상황을 어찌하오리까! 겁이 덜컥 난다.
다른 사람 신경 쓰는 것이 싫다고 혼자 독방에 계시는 동쪽 끝방 어르신이 집중 케어 대상이다. 응급실에서 “집으로 모시고 가세요.”라고 했다는데 집으로 모시지 않고 다시 여기로 모셔 왔다면서 “금방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3일을 견뎠다.”라고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봐야 한단다.
퇴근 시간이 된 복지사를 붙들고 퇴근하지 말고 같이 있으면 안 되겠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던졌다. 그 말속에는 진심으로 잡고 싶은 마음이 더 많았다. 진심이 통했는지 “그럴까요?” 하면서 정말로 그렇게 해 주겠단다. 평소에도 힘들어 끙끙거릴 때 말이라도 힘내라고 격려해 주며 물 한잔이라도 더 챙겨주는 사이이긴 하지만 이렇게 쉽게 대답할 줄은 몰랐는데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던지.
목마른 자에게 물 한잔 건네주는 그 손이 소중하듯이 누군가 필요로 할 때 힘이 되어주는 따뜻한 마음이 귀하다.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귀한지 서로 의지하며 순간순간의 상황을 체크한다. 둘이라 외롭지 않고 둘이라 두렵지 않다.
한 방울 두 방울 아주 느린 속도로 떨어지던 링거액이 주춤거린다. 무슨 일인가 산소포화도가 80% 초반으로 떨어지다 90% 이상으로 정상에 올랐다. 또 떨어지고 또 올라가기를 반복하며 불안한 곡선을 그린다. 깜깜한 밤 홀로 산모퉁이 돌아가다 어떤 무서운 손에 목덜미라도 잡힌 듯 으슥한 느낌이다. 왜 하필이면 오늘일까 오늘 밤만은 잘 넘어가기를 바라며 산소포화도의 변화를 체크하며 지켜본다.
손만 살짝 닿아도 “아야 아야, 아프다 아프다” 유별나게 예민하던 까랑까랑한 그 목소리로 힘주어 고함이라도 질러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헉헉 숨 쉴 때마다 힘없이 흔들리는 입술은 희끗희끗 말라가고 구부러진 다리는 꾹 눌러도 아야 소리도 없이 서서히 펴져간다. 그렁그렁 담 끓는 소리 사이로 푸~우 하는 숨소리는 얼마나 힘든지를 짐작케 하고 얇은 눈꺼풀이 그렇게도 무거운지 두 눈을 푹 덮었다.
”그때가 되면 발톱부터 새카맣게 죽어가더라.” 고 했던 경험자의 조언이 생각나 어르신 양말을 벗기고 발톱을 찬찬히 살펴본다. 지금 이 상황이 어느 시점까지 온 것인지 두 눈으로 보고 두 손으로 만져 보아도 상황을 파악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손에 쥐어줘도 모를 이 무지함을 어찌할꼬. 그래도 발에 온기가 느껴져 다행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내 손발이 더 차가운데 ‘오늘 밤만은 아니겠지’ 그러기를 바라면서 가늘게 휴~ 숨을 내쉬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새끼줄을 꼬듯이 쫀쫀하게 살아온 삶의 줄을 쉽게 놓아 버리지 않기를 바라지만 마음 놓을 수 없는 불안 불안한 시간은 계속된다. 언제 뚝 떨어져 버릴지 알 수 없는 벼랑 끝에서 씨름 중인 어르신을 가만히 지켜보며 생각한다. 슬하에 자녀는 몇 명이며 일생을 어떻게 사셨는지 굳이 그 이력을 깊이 캐묻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마지막 능선을 넘으며 이렇게 힘겨워하는데 이때 곁에 있어 줄 가족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우발적인 사고도 아니고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가족들이 다 알면서 이럴 수가 있는가 참 너무하다. 손 한번 잡아줄 가족 없이 홀로 떠나는 그 모습이 너무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타인의 아픔을 모른 척 눈 감으면 내 눈 감을 때 아무도 오지 않는다.” 어디에서 본 글귀가 생각난다. 이 어르신은 92년 동안 어떻게 살아오셨을까? 나 몰라라 냉정하게 살아오셨을까. 설마 엄만데. 남의 어머니 임종을 지켜보며 여자의 일생 엄마의 일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나도 엄만데 나도 여잔데 나도 자식인데.
“영우야 정우야 이 엄마가 다 잘못했다. 이 엄마를 용서해라” “내 아들 영우야 정우야”를 한동안 애타게 불렀다. 자식과 풀어야 할 매듭이라도 있는지 그 매듭을 풀고 가려고 그렇게 애타게 아들을 찾았는지. 며칠 사이에 그 아들들 만나기나 했을까.
”긴병에 효자 없다” 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 할 수 있는 사랑하는 내편 한 사람쯤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내가 내게 하는 말 너는 어떻냐고 물어본다. 딱히 할 말이 없다. 지금부터라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인생 참 잘 살아야 되겠다.’는 책임감이 양쪽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밤이다.
정신을 차리고 어르신을 편안한 자세로 누이고 옷매무새를 봐 드렸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며칠 전 깨끗하게 목욕이라도 시켜 드린 게 참 잘한 일이다. 그래도 까칠하게 들뜬 다리에는 마음을 담아 바디로션을 발라 드렸다.
산소포화도가 70%~80%를 오르내리더니 60~50% 급박하게 뚝뚝뚝 떨어져 - - - - 삐 하며 멈추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의사의 사망진단은 아니지만 초보가 봐도 운명하셨다. 밤새 안녕이란 말이 이래서 나온 것인가 싶기도 하다. 결국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22시가 임박한 시간에 우리가 알 수 없는 그곳을 향해 어머니는 아들 딸 배웅도 받지 못하고 홀로 떠났다.
어르신 한평생 수고했습니다.
이젠 어디든지 자유롭게 잘 가세요.
한 어머니의 인생 마지막을 배웅하며 인사드렸다.
늦게 도착한 가족들이 뒤 수습을 하는 동안 갑자기 섬뜩하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숨 떨어진 그 모습을 더 이상 눈에 담고 싶지 않았다. 그 여운이 너무 오래 남을까 봐 그 방을 빠져나왔다.
자정이 지나 현장 수습이 마무리되었지만 뒤숭숭한 마음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무거운 몸과 맘으로 아침을 맞았다. 쌀쌀한 아침 기온이 섣달임을 실감케 한다. 정월 초하루를 며칠 앞둔 어젯밤의 잔상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오늘 떠오른 저 태양은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부도 묻지 않고 한결같이 밝기만 하다.
누구에게는 가슴 아픈 인생의 끝 지점이지만 누구에게는 또 새로운 시작이 되는 이 교차점을 지나 오늘이란 하루는 또 시작된다. 세상에 온 이상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고 생명이 다 하는 그 시간까지는 슬픔도 기쁨도 비빔밥처럼 비벼 넘겨야 한다. 어제는 지나갔고 새로운 오늘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 내어야 한다.
아침이지만 어르신이 떠난 그 방 쪽은 보기도 싫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기는 더더욱 싫다.
섬뜩하고 무서운 생각에 공기 한 점도 새어 나오지 못하게 방문을 꽉 닫아버렸다.
경험이 없어서일까?
마음이 여려서일까?
겁이 많아서일까?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 마음이 떨리는 건 사실이다. 좀 더 강해져야 될 텐데.
어쩌면 감정이 무뎌져야 된다는 말이기도 하고 죽음과 마주하며 직접 체험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으로 겪은 그 일을 잊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