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만 남았으면 좋겠지만
그 손에 들고 있는 것 뭐예요? “응, 이거 찹쌀떡 맛있게 하는 떡집에서 사 왔어." 찹쌀떡 하면 오래된 일이지만 기연 할머니가 생각난다. 하얀 머리에 녹차 밭 골 같은 주름살과 합죽한 입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교양 있고 성품 좋은 분이다.
다만 음식 앞에서는 체면도 교양도 필요 없고 욕심내어 급하게 드신다. 소화기능이 좋지 않아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대로 배출하는 할머니는 치매 환자다. 연세는 일흔 하나. 기운 없어 기진맥진 늘어져 누웠을 땐 애처롭고 안타깝다. 건강이 회복되면 수녀 딸이 모시고 가겠다고 한다. 방문할 때마다 묵묵히 기도하는 딸을 보더라도 빨리 회복되길 바랐다.
시간이 지나고 정성 들인 만큼 할머니는 차츰 건강이 회복되었다. 어느 날은 뼈와 가죽이 맞붙은 깡마른 몸속에서 건강한 사람에게나 기대할 만한 보물 하나를 내밀고 있었다. 노란 황금색에 겉모양은 매끈매끈한 그런 귀한 것을 정말로 혼자 보기 아까워 ‘여러분 여기 좀 보세요.’ 소리 지르고 싶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배는 늘 합죽하고 콩나물을 접시에 담아 놓은 듯 그대로 내놓았던 분인데 정말 감사할 일이다. 배설물 앞에서 이렇게 감탄할 수 있다니 기뻐 흥분하다니 내 생에 두 번째로 느끼는 기쁨이랄까.
더럽게 무슨 대변을 가지고 미친 소리 하느냐 하겠지만 그땐 정말 남다른 느낌이었다.
돌도 안 된 어린 내 딸이 소화 불량 변비에 걸려 작은 배가 터질 듯 볼록하게 나와서 먹지도 못하고 끙끙거릴 때 애타는 그 심정.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를 끌어안고 소아과로 달려갔던 일. 그 작은 항문으로 관장약을 주입하고 마음 졸이며 기다렸던 일. 볼록 나온 뱃속에서 너무도 쉽게 내놓았던 그 똥. 그것은 똥이 아닌 기쁨이요 환희였고 시원함이었다. 그 쪼그만 배 속에서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이도 내놓았다. 그때 느꼈던 그 기쁨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놀랐다. 황폐한 내 마음속에도 노약자와 함께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이런 감성과 사랑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내 딸의 아픔이야 내 아픔이 될 수 있지만 기연 할머니와 나는 다만 폭풍우 속에 된서리 맞은 한 어미가 살 길을 찾아 헤매다 만나게 된 인연일 뿐인데. 할머니의 정상적인 변 이야기는 그만큼 건강이 좋아졌다는 증거다. 며칠 안에 딸이 수녀원 노인시설로 모시고 갈 계획을 세웠다. 정말 다행이다. 퇴원을 앞둔 어느 날 둘도 없는 동생을 보러 왔던 오빠는 찹쌀떡을 사 왔다. 할머니는 여전히 먹거리에 대해선 욕심이 많았다. 오라버님이 포장을 뜯기가 무섭게 할머니의 손은 찹쌀떡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가 없으니 씹지도 않고 욕신내어 두 개 세 개를 입으로 가져갔다.
눈앞에 서 있던 오빠가 손 쓸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빠는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며 소리 질렀다. 먹거리 앞에선 정말 빠르기도 했다. 입술이 새파랗게 변하고 응급 비상사태 발생. 급한 나머지 손이 입 안으로 들어가고 등을 두드리고 난리 난리. 죽느냐. 사느냐. ‘초’를 다투는 긴박한 순간. 나의 온몸과 두 다리는 벌벌 떨고 당황하면서도 이성적으로 상황 판단이 빨라야 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비상사태라고 고함지를 힘조차도 없었다.
여러 사람의 도움과 응급 의료기들의 도움으로 응급상황은 넘겼다. 워낙에 약한 몸에 간들간들한 분이라 초주검을 겪고 나니 빨리 회복되지는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집중보호를 받으며 일주일을 더 견디다 결국은 떠나셨다. 정상회복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기쁨은커녕 좋아하는 떡 드시고 건강하라고 찹쌀떡을 사 왔던 오빠에겐 씻을 수 없는 한을 남겼다. 효도하려 했던 딸의 마음도 받지 못하고 이 땅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기억 속의 얼굴로 남았다. 찹쌀떡만 보면 생각나는 그 여운은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