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좌충우돌
그때는 치매라는 병을 몰랐을 때였다. “누구 어른, 누구 댁이 노망 났는지 벽에 똥칠하고 이상한 행동을 한단다.” 옛 어른들께 들은 말씀이다. 지금생각하니 그런 증상이 치매였다. “벽에 똥칠하도록 살아라” 는 말을 들어본 것도 같다. 그 말은 아마도 미운 사람에게 하는 소리지 오래 살라고 하는 좋은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서운 치매 걸리라고 하는 말과도 같다.
치매가 뭔지도 모르고 살다가 치매에 관심을 갖게 된 지가 꽤 오래되었다. 개개인 치매가족보다도 어쩌면 더 다양한 증상의 치매환자를 보아 온 결과로 길을 가다가 사진이 첨부된 “000 할머니, 000 할아버지 보신 분은 연락 주세요.” 란 벽보 앞에 서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어르신들에게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무심코 지나칠 수가 없다.
누구라도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면 제일 좋겠지만 특히 치매라는 병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강할 때 건강 챙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치매환자들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영수야! 영수야!~영수야~ 아!”
앞 못 보는 할머니의 쓰러질 듯 넘어질 듯 버둥거리며 하루종일 애타게 아들 부르는 소리.
어디에서 아들 목소리라도 들리려나 귀 기울이시는 할머니.
“경민아! 경민아! 경민 애~이~”
창밖을 내다보며 학교 갔던 손자가 밖에서 못 들어오고 있다고 “밥 해 먹여야 되는데 우짜꼬. 내가 여기 이러고 있어 가 안되는데 아 밥 주고 올 것인께 나 좀 보내줘 어이” 손자 생각에 애가 타서 안절부절 불안해 못 견디며 가방 지고 가는 아이는 다 내 손자로 보이는 할머니.
“오늘 장날이지요. 이 집에는 장에 안 가는 기요?”
“갈라 카거든 나 캉 같이 가입시더. 버스 올 시간 다 되갈긴데 빨리 가입시더” 담요를 펴고 베개, 수건, 옷, 약봉지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집어넣고 한 보따리 만들어 머리에 이고는 장에 가야 된다고 문 앞에서 고함지르며 문 열라는 할머니.
“아주머니는 사람도 참 좋아 보이네요.”
“어디에 사십니까?
“대우아파트에 삽니다.”
“그래요 우리 집도 대우아파튼데.”
“어르신 집에는 누구누구 살아요?”
“우리 아들하고 며느리 하고 손자 둘이요.”
“우리 아들은 쉰다섯 며느리는 쉰둘이네.”
“ 아주머니는 올해 몇이에요?”
“저도 쉰둘입니다.”
“그래요? 우리 며느리 하고 나이가 똑같네요.”
“저 누군지 모르겠어요?”
“글쎄, 모르겠네요 처음 보는 젊은 인데”
“우리 며느리도 아주머니처럼 사람 참 좋은데”
아들 며느리 나이까지도 잘 알면서 사람을 기억 못 하고 며느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며 공손히 대하시는 어머니.
높은 곳이고 위험한 곳을 가리지 않고 창틀에 올라가 고함지르고 공포 분위기 조성하며 속에서 불이 나는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나체쇼까지 벌이며 여러 사람 혼을 쏙 빼놓는 할아버지.
젊고 예쁜 여자만 보면 “둘이 꼭 껴안고 한숨 잤으면 딱 좋겠다.”라고 먹고 자고 배설하고 불쑥 일어나는 성욕까지 생리적 본능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은 청춘이신 할아버지.
밥을 드셔도 하루 종일 먹거리를 찾아서 어디든 뒤지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입에 넣고 무슨 일이든 말이든 욕으로 시작하여 욕으로 끝내는 욕쟁이 할머니.
마음에 안 맞으면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고 물바가지 퍼부으며 화풀이하시는 할머니.
말 못 하고 참고 참으며 치열하게 살아오신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보면 안타깝다.
무엇이 그렇게 공포에 떨게 하는지 침대 밑에 꼭꼭 숨어서 움츠리고 주무시는 할머니.
대형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할머니요 나가는 길이 어딘기요?”
“할머니는 어디 가시는기요?”
“집에 가봐야 되는데 길을 못 찾겠네요.”
“할머니도 마~이 늙었다.”
“머리가 허~옇네요.”
“나도 머리가 젊을 때부터 다 쉬데요.”
혼자서 거울 속 자기와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애달프다며 쯧쯧쯧하는 할머니.
대변을 보고 난 후 기저귀 속에서 염소 똥같이 땡글땡글한 그 변을 소중한 환약 다루듯이 특별히 잘 챙겨 선반 위에 얌전히 모셔 놓는 할머니. 어디선가 나는 묘한 냄새로 들통이 나기는 하지만 찾아내기 힘들 만큼 소중하게 꽁꽁 숨겨 둔 어르신.
세면대가 뭐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는 물건일 뿐. 변기에 물이 찰랑찰랑 담겨 있으니 세숫물인 줄 알고 그 물에 세수하는 어르신.
밥그릇에 숟가락 푹 꽂아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리 아들, 딸, 손자, 손녀 모두 다 잘 되도록 도와주이소. 비나이다. 비나이다.” 식사 때마다 밥 상 앞에서 절하면서 두 손 모아 공들이는 할머니.
복음성가 한판 부르며 사람들 붙잡고 시도 때도 없이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전도하는 왕연의 권사 할머니. “하나님 믿는 사람이 왜 치매가 걸리는지 정신을 놓으니까 그렇지.” 이해 못 한 며느리의 안타까운 하소연.
어르신들의 여러 가지 치매 증상들을 보면서 누구나 다 노화현상을 피해 갈 수는 없지만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치매. 온 가족의 고통이 동반되는 치매는 피해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젊음을 다 바쳐 열심히 살아온 노후의 보상이 이렇게 돌아온다면 너무 슬픈 현실이다. 병들어 좋을 병은 하나도 없지만 치매는 정말 무섭다.
모두 다 즐겁게 살다가 때가 되면 모든 삶의 끈을 조용히 내려놓고 잠자듯이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번 왔다 가는 인생. 어우렁 더우렁 서로 돌아보며 재미있게 사는 세상을 누구는 꿈꾸지 않았을까.
부모는 사철 푸른 소나무처럼 늘 푸르고 건강하게 그 자리 지키며 잘 살고 계실 것 같지만, 자식들이 기반 잡고 흡족해하며 찾아뵐 때까지 우리 부모님들은 오래오래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
언제나 자식들 앞에서는 "난 잘 있다 걱정하지 말고 너희들이나 잘 살아라”하지만 그 반대 일 때도 흔히 그렇게 말씀하시고 속마음은 덮어두고 내내 속을 끓이신다는 것.
사람마다 성격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어르신들은 자식들 부담 줄까 봐 필요한 거나 아쉬운 게 있어도 참고 견디며 속마음을 직설적으로 잘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
늙고 보니 존재감도 할 일도 없고 무료하게 지내다 보면 외롭고 우울하여 병나기 십상이다. 병든 부모 병시중 들며 에너지 소비하기보다 즐겁게 웃으며 바라볼 수 있을 때 내 가족 내 부모 한 번 더 돌아보고 챙기는 것. 당연하다 생각은 하지만 내 자식 챙기기에 더 바쁘다 보면 잘 안 되는 것이 또 부모 챙기기다.
옛말처럼 “벽에 똥칠하며 오래 사는 것”은 장수하는 복이 아니라 온 가족이 고역일 뿐이다.
모두가 건강한 정신과 몸으로 아름다운 인생 행복한 노후를 보냈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