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은 누가 더 고생입니까
늘씬한 키와 하얀 피부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웨이브 진 백발이 멋지게 잘 어울리는 75세 어머니를 만난 지 일 년이 좀 더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뭇 남성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키며 살지 않았을까. 지금도 충분히 멋스러우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팥빙수 병에 걸려서 이렇게 됐다."라고 병명을 이야기하며 찡긋 웃을 때는 눈가 잔주름까지도 매력적이다. 팥빙수 병이라고 소개했던 파킨슨 병의 진행속도는 너무도 빨랐고 일 년 사이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입은 잘 움직이지도 않고 씹는 기능이 떨어지니 밥에서 죽으로 죽에서 유동식으로 연명하게 됐다.
팔다리는 뻣뻣하게 굳어져 손끝 하나 꼼짝하지 못하니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겨우 얼굴에 달린 눈 코 귀 입으로 할 수 있는 것뿐이다. 보고 듣고 숨 쉬고 하품하고 재채기하기와 겨우 연명하는 정도다. 군살과 근육은 다 빠지고 뼈대만 남은 큰 키에 웅덩이처럼 푹 꺼진 배는 보는 이가 더 민망할 정도다. 밑동 잘린 나무둥치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굴리면 굴리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처지이니 웨이브 진 멋진 머리도 오래도록 유지할 수가 없다. 아무리 미에 관심 있고 좋아한다 하더라도 내 손으로 머리카락 하나 옮길 수 없으니 멋보다는 편리하고 위생적이어야 하니까 점점 남자처럼 스포츠머리로 짧아진다. 그래도 두상이 동그라니 예쁘게 생겨서 밉지는 않다.
하루 24시간을 와상환자로 누워 지내다 보니 누가 찾아와 말 걸어 주지 않으면 인간의 정이 그리운 터라
“난 자네가 좋다. 날 미워하지 마 불쌍하잖아. “
“난 자네를 점찍었어. 내 딸 하자.”
예쁜 딸내미 있잖아요.
“그러면 아들 하자.”
아들도 있잖아요.
“나하고 서울 가자.”
딸내미랑 같이 서울도 가고 어디든 가세요. 오래 잡아놓고 싶어 이말 저말 아무 말 잔치를 벌인다.
“우리 딸내미는 신랑 있다. “
저도 신랑 있는데요.
“신랑 있는 게 이래 고생하나.”
파킨슨병에 치매까지 동반된 어르신의 오락가락하는 소리지만 그 순간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이다.
‘도대체 내 신랑은 뭐 하는 거야’
신랑 있으면 고생 안 하는 모양인데. 손끝도 까딱 할 수 없는 와상환자에게 띵 한 대 맞은 이 기분 알기나 하려나 신랑아!
신랑 있으면 만사형통인가. 신랑이 만능인 가요?
하루살이가 눈앞을 가려도 모기가 귀 옆에서 앵앵거려도 손끝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와상환자. 누가 봐도 더 애처롭고 불쌍하고 고생하는 것이 훤히 보이는 그분이 보기에도 내가 애처로워 보였을까?
순간 제가 그렇게 고생스러워 보이는가요? 물어보고 싶었지만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생각은 자유니까. 어쨌거나 "난 자네가 좋다.”시며 뚫어지게 바라보시던 그 애절한 눈빛을 마주 할 자신이 없다. 마음이 녹아내릴 것 같아서 그 애절한 눈을 피하고 싶다.
스스로 불쌍하다고 말씀하시던 그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나타난 노신사 한분!
“잘 살지 왜 이러고 살아” 하면서 머리맡에서 내려다보고 서있었던 그 남자. 남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둘만의 묘한 시간. 지금까지 남편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고 방문한 적도 없었다.
홀어머니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남편이란다. 의외의 손님이었다. “이제 소식 듣고 찾아왔다.”며 오래전 이혼한 사이였다. 옛정을 생각하며 찾아온 방문인지 진심이 얼마나 녹아 있는 발걸음인지 서로 어색하기는 했지만 따뜻한 분위기였다
누가 먼저 싫다고 등 돌리고 떠났는지 깊은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잘 살지 왜 이러고 살아” 하시던
그 말속에는 지금까지 하지 못한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서로가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어야지. 세월이 흘러 만난 두 분의 묘한 분위기 속에는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연민의 정이 그래도 약간은 남아 있는 듯했다. 이 어르신의 "신랑 있는 게 이렇게 고생하냐.” 고 했던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약간은 이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