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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Nov 24. 2023

늙음도 참 예쁘다

오늘이 제일 젊은 날


우리는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1층에서 바라보는 49층은 아득하다. 엘리베이터가 초고속으로 오르내리는데도 기다림의 시간은 지루하다. 언제 1층에 도착하려나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이 무안하게 지하 5층까지 쭉 내려가버린다. 속이 답답하지만 참아야 한다.


지하에서 이미 네댓 명이 타고 온다. 한 할머니는 짐가방 서너 개를 발 앞에 널브러뜨려 놓고 엉거주춤 서있다. 40층 35층 24층 15층 층수를 더할 때마다 한숨 쉬며 “아이고 숨답답아서 어째 살꼬. 큰일이네 출퇴근시간에는 또 얼마나 복잡할까. 20층짜리 아파트에서만 살다 왔더니 답답해서 숨 넘어갈 것 같다.” 고 앞으로 살아갈 일을 걱정한다.


고층아파트가 왜 좋은지 모르는 일인 앞에 앞으로 살아갈 일을 걱정하는 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다. 연령층이 높을수록 저층을 더 좋아하는가. 고층을 오르내리는 할머니의 한숨소리가 낯설지 않다. 그 답답한 심정을 모른 척 보고 있지만 비슷한 느낌이다.


이제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라 엘리베이터 하나는 이사전용. 먼저 입주한 주민들은 불편하지만  시기가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 아빠  엄마  이라고  것을 강조하는  살짜리 꼬마는 고층을 문제 삼지 않는다. 생애최초  집마련의 꿈을 이루어  입주하는 젊은이들에게도  할머니의 푸념이 통할까. 


그 짧은 순간에도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더 하고 싶은지 “이이구 세상에나 세월도 참 빠르지  인생 산다고 할 것도 없어. 허리 펼 여가도 없이 생고생하며 살다 보니 이 나이가 됐다. 정신 차릴 여가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지금은 별 존재감도 없다. 자네들은 늙지 말고 요대로만 살아라. 요놈의 세월이 좀 더 놀다 오라고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정신 차려보니 해가 서산으로 지고 있더라. 인생살이 산다고 할 것도 없어 빨라도 너무 빨라.” 생고생하며 살 때는 지겨웠을 텐데도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며 어디라도 그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나 보다.


응답해 주는 이도 없는데 혼잣말을 대게 잘 들리게 하던 그 어른을 보며 “늙은이는 젊은이가 묻지 않으면 말하지 마라. 늙은이는 웃어도 밉다.” 는 그 말이 생각난다. 늙은이는 웃어도 밉다는데 세월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예쁘다 소리는 못 들을망정 밉상이다. 괴물 같다는 소리는 안 듣는 늙은이가 되어야 할 텐데. 늙음이란 말은 다른 사람에게나 해당되고 매양 청춘일 줄 알았는데 우물쭈물하다 보니 어느새 늙은이가 되어간다. 그 길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나 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몸부림쳐봐도 꽃은 피었다 지고 물든 낙엽은 때가 되면 떨어진다. “가을은 참 예쁘다.” 노래하는 그 마음은 예쁘지만 가는 세월은 양보도 없고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는 우리는 주어진 하루하루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다. 살면서 지켜내야 할 것들은 마음에 새기고 웃어도 미운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울어도 예쁜 어른은 될 수 없을까.

가을은 참 예쁘다. 따스한 햇살도 모진 비바람도 잘 견뎌 온 늙음도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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