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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것들은, 결코 아무것도 아니지 않았음을.

by 오롯하게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모든 것들이 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들이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지는 않았을 거다.


모든 것들이 내 곁에 있다가도, 언제 있었냐는듯 그렇게 모습을 뒤로 감춘다. 살아가는동안 무수한 것들이 다 그러하지만 나에게는 특히나 사랑이 그렇다. 평생을 곁에 영원히 있을 것만 같다가도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진다. 나의 일부와 함께. 그래서 사랑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만큼 그 헤어짐이 고통스럽다. 그 사람만, 그 사람과의 관계만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했던 그 모든 시간속의 나도 함께 끊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묻어있는 울고 웃고 행복해했던 그 모든 시간속의 나를 지워야 하는 거. 그게 이별이다. 그 이별이 지나고 그 두텁던 시간들을 떠올려도 아무렇지 않을 때가 오면, 그 다채롭고 빛나던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래서 좋기도 또 허무하기도 하다.


요즘은 특히나 나를 지나간 몇몇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자꾸만 과거속에 사는 것 같아 그러지 않으려 노력을 해도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지루한 모습으로 다가와서인지는 몰라도 다채롭고 입체적이던 그 때의 시간들로 심심한 현실에 자꾸 간을 맞춘다.

많은 것들이 처음이었던 그때 그 시간들을 지나고 나니, 이제는 어떤 일에도 크게 좋아한다거나 크게 낙담하는 일 자체가 없어졌다. 좋아도 잠깐, 싫고 힘들어도 잠깐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자꾸만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던 그 때를 떠올리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처음이었던 그 무수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것임을 안다.


아직도 거리를 지나가면 떠오르는 그 향기로움과, 어느 날의 밤공기가 흘리는 발자취에 떠오르는 첫 입맞춤이라던지 다시 본 영화 속 어떤 대사의 한 구절. 유난히 떠오르는 어떤 밤의 눈물과 감정과 행복들이. 그 때의 내가 빛나도록 찬란했기에 지금의 내가 더 다채로워졌다 생각한다. 그때 흘렸던 벅찼던 눈물들과 아픔과 무지막지하게 행복할 줄 알았던 나에게 고맙다 말하고싶다. 앞으로도 그토록 찬란하게 웃고 세상이 망할 것 처럼 울고 일요일 아침 햇빛처럼 빛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며,


서머싯 몸의 면도날에 이런 글이 있다. 이 글을 끝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은 결코 아무것도 아니지 않았음을, 말하고 싶다.


끝없이 존속한다고 해서 좋은 것이 더 좋아지지는 않으며 하얀 것이 더 하얘지지는 않죠. 새벽에 아름다웠던 장미가 정오에 그 아름다움을 잃는다고 해도 그것이 새벽에 가졌던 아름다움은 실제로 존재했던 거잖아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요. 그러니 무언가에게 영원한 존속을 요구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겠죠. 하지만 그것이 존재할 때 그 안에서 기쁨을 취하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어리석은 거에요. 변화가 존재의 변질이라면 그것을 우리 철학의 전제로 삼는 것이 현명하죠.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어요.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니까. 하지만 다른 강물에 들어가도 그것 역시 시원하고 상쾌한 건 틀림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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