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바짝 깎는 잔디의 머리칼이 바닥에 나뒹군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모두 맞아내고 더 단단해진 뿌리로 독기가 올라 길러낸 머리칼들이다. 빽빽하게 자라 발을 내딛을 때 마다 잔디밭 길이 구름 위를 걷는 것 처럼 폭신하기만 하다.
빳빳하게 자라오른 잔디들을 자르는 일은 쉽지 않다. 한 쪽 발에 힘을 주고 뱃심으로 밀어내야한다. 기계가 잔디에서 떨어지게되면 잔디의 결이 비쭉거리며 달라질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힘으로 밀어내야한다. 잔디가 자라난 결대로 한 줄 한 줄 밀어내야한다. 결대로 잔디를 밀다보면 평소 땀이 잘 나지 않는 나도, 축축해진 등줄기를 갖게된다. 땀이 나기 시작하면 온갖 벌레들이 달라든다. 달려드는 벌레들과 끈적거리는 팔다리를 모른채하지 않으면 그 빳빳한 잔디칼들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끝까지 밀어어한다. 끝까지.
아버지가 비료를 너무 많이 준 탓에 그 빳빳한 잔디들을 삼일에 한번은 깎아야 한다고 하셨다. 한 바탕 잔디들을 깎고나면 마당에 온갖 흩뿌려져있는 그 머리칼들을 모두 빗질하여 포대자루에 담아내야한다. 머리칼들을 잘라낼때에 오갔던 길들을 다시 한 번 걸어야 한다는거다. 빗질을 하지 않으면 마당을 걸을 때마다 신발 바닥에 붙어있던 그 머리칼들이 온 마을을 돌아다닌다.
잔디를 깎는다는건 참아냄의 연속이다. 참고 참아야 그 온 마당을 덮고있는 잔디의 머리칼들을 걷어낼 수 있다. 깎아주지 않으면 아마 뒤엉키도록 길어버릴 것이다. 그럼 마당을 걷기 힘들어질거고, 마당에서 달을 보는 일도 어려운 일이 될거다.
삶의 많은 것들이 잔디와 같다. 참아내지 않고 견디지 못하면 만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시간은 얼마가 걸릴 지 모르고, 또 얼만큼 해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될 때까지 해 보는 수 밖에 없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그 빽빽하고 푸르던 잔디들은 색을 죽이고 몸을 뉘일 것이다. 다음에 날 여름을 위한 거겠지.
별 것 아닌 주위의 많은 것들이 어쩌면 우리들 삶을 대변하고, 이렇게 살아가면 된다. 이렇게 흘려보내면 된다 외치는 것 같아, 그 빳빳하고 초록이던 잔디들을 베어내며 살아보자.살아보자. 몇번이고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