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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유서

오늘도 나는 살았습니다.

2. 글쓰기

by 오롯하게

펜과 종이를 찾는다는 건 내가 위태로울지도 모른다는 증상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복잡하고 어지러운 생각을 검은 활자로 정리하는 일과는 완전히 다르니까요. 그래서 줄곧 내가 적어 내려 가는 모든 글들은 살고자 하는 발버둥 또는 죽기 직전 남기는 유서 같기도 합니다. 행복한 순간들이 가슴에 왈칵 넘쳐 이를 뱉어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훨씬 많으니 그렇다고 해두겠습니다.

어쩌면 내가 어느 방면으로든 글을 쓰는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일 겁니다. 글을 쓰는 행위. 하얀 무언가의 위에 검은 활자를 그리는 일이 나를 살게 하니까요. 목숨 같은 것을 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니까요.
지금껏 세상을 위로해 온 수많은 멜로디와 글과 그림들을 낳은 이들은 대부분 우울했거나 비련 했거나 처량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너무 싫습니다. 고통이 어쩌면 아름다운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결국은 믿고 싶지 않은 진실같이 느껴지게 하니까요. 하지만 속이 타들어갈 때마다, 꼭 죽고 싶을 때마다 종이와 펜을 찾게 되는 나를 보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이들이 거쳐온 순간들을 나만 건너뛸 수는 없으니까요.

글을 쓴다는 건 나에게 우는 것보다도 더 처량하고 애처로운 행위이기도 합니다. 나의 삶을 꿋꿋이 이어온 수억 개의 끈들을 모조리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에 잡는 유일한 것이 바로 펜이니까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것들을 이토록 처절히 글로 써 내려갈 때면 세상에 소리 한번 뱉어본 적 없는 벙어리가 된 기분입니다.

글을 쓸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글을 쓰는 일을 하지 못했더라면 진작에 숨이 멎어버렸을지 모르니까요. 아니면 또 다른 숨구멍을 기어코 찾아내고야 말았을까요.

세상을 간 보듯 슬쩍슬쩍 내리는 비를 우산 없이 맞아보려 합니다. 어김없이 나를 간보려 찾아온 무심한 돌덩이들도 슬쩍슬쩍, 이 글에 내려놓아보려 합니다.


오늘도 나는,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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