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포 선라이즈>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는가. 뭐 나는 그럴 수 있다 생각한다.
외적인 모습에 반한다 해도 5분도 안되는 대화에 ‘확’ 깰 수도 있는 노릇이다. 물론 외적인 모습에서 느끼는 사랑을 무시한다거나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첫 대화에 반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은 확신할 수 있다. 목적지도 이유도 달랐던 제시와 셀린이 흔들리는 열차에 만나 서로의 말에 반했듯, 이 글을 보는 당신 또한 그런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조용한 열차 안에서 시끄럽게 싸우는 독일인 부부’덕분’에 자리를 옮긴 셀린은 우연치 않게 제시의 반대쪽 좌석에 앉게 되고, 그렇게 제시와 셀린은 첫 대화를 나눈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취미가 비슷하다거나 좋아하는 음악 혹은 영화나 드라마 하나만 겹치더라도 온통 할 얘기투성이다. 하지만 ‘말’과 ‘대화’는 다르다. 그저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뱉어내는 것을 ‘말’이라고 칭한다면 ‘대화’는 서로간의 교감이다.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입맞춤을 나누는 데에서는 감히 느낄 수 없는 서로의 교감을 ‘대화’를 통해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각자의 생각을 마음과 같이 곱게 접어 상대에게 건네주면 서로에게 건네 받은 예쁜 생각과 마음들을 하나하나 펴보면서 그렇게 서로에게 물드는 것이다. 대화를 나눌 때에 서로의 눈을 마주보다가 눈썹을 하나하나 보고, 코와 입을 보면서 그렇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열차에서 제시를 따라 내린 셀린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 아무런 생각도 마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게 끌린다는 것 아닐까? 무언가에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운명 인 듯 우연 인 듯 자연스럽게 기차에서 내려 비엔나를 거닐고 있는 제시와 셀린에게는 목적지도, 흘러가는 시간과 불어오는 바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서로에게 서로만 있었을 뿐.
사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화려한 영상기법이나 마음을 울리는 그 흔한 백그라운드 뮤직도 깔리지 않는다. 모든 화면과 영화의 소리들은 제시와 셀린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대화뿐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고 마음을 내어주는 이유는 결국 그들이 느끼는 대화 속의 교감이 관객들에게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그들의 대화는 관객들이 영화에 빠져들었듯, 제시와 셀린이 서로에게 흠뻑 빠져들어, 애타고 간절한 입맞춤을 나누게 하였고, 무심히도 흘러가버리는 시간은 그 둘의 마음을 더 크게 만들었다. 헤어짐은 자비도 없이 그들을 찾아왔고 열차 앞 뜨거운 입맞춤과 지켜질지 모를 기약을 남긴 채 그렇게 헤어진다.
하루 동안의 대화였다. 대화 속에 숨어있던 조개 속 진주 같은 그들의 교감이 야속한 시간 속에서 그들을 서로 간절히 원하게 만들었고.… 그 다음은 모른다. 이 글의 마지막을 비열한 스포로 마무리 짓기 싫어 모른다는 말로 끝을 맺으려 한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 시간은 겨우 0.2초라고 한다. 신기하면서도 참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몇 십년 을 살아가다가도 살아온 시간들이 무색할 만큼, 고작 0.2초 만에 인생을 걸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설레면서도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 또한 누군가의 아름답고 멋진 외모에 눈을 내어주기보다, 제시와 셀린처럼 그들의 소리에 귀를 내어주길. 그대들도 그런 사랑을 하게 되길.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비포선라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