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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Mar 03. 2016

2016.3.3 - 오늘

                                                                                                                                      

요즘은 도시가스 요금이나 전기세 고지서도 문자로 온다. 우체국에서 올 것이 있으면 카톡으로 연락이 온다. 건강검진을 하라고, 날이 덥다고, 미세먼지를 주의하라고도 알려준다.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월초가 되면 각종 보험회사에서 희망찬 새달을 맞이하라는 문자가 다투어서 도착한다. 하긴 생일이면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보다 카드회사나 다니는 미용실, 백화점 등지에서 축하 인사가 더 먼저 그리고 더 많이 오는 세상이다. 나는 그저 내 주위가 조금만 더 조용해졌으면 좋겠다. 말과 글들이 너무 많고 너무 날카로워서 자칫 잘못하면 허공에 떠다니는 글자들에 마음을 베일 것 같다. 너도 나도 말들은 하는데 그게 새 말이 아니고 언젠가 들은 말이고 어디선가 본 글들이다. 말 안 하면 누가 잡아가나? 때가 되면 알 것들을 여기저기서 미리 알려주고 거듭 일깨워주니 나처럼 신경이 무딘 사람까지 마음이 팔랑팔랑 부대껴서 이러다가는 바스락하고 부서질 것만 같네.



지난번에 굽고 남은 타르트 쉘이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거슬렸다. 어제 먹다 남은 불고기를 볶아서 담고 계란과 요구르트, 우유를 섞어 붓고는 위에다 치즈를 얹어 구웠다. 느릿느릿 움직였어도 미리 구워놓은 타르트 쉘에 고기만 볶아서 담는 거라 금방 끝이 났다. 오븐에 타르트를 넣어놓고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뭐 걱정거리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런가 보다. 저 사람은. 내가 가만히 있으면 무슨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지. 생각할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걱정거리는 아닌데 그걸 설명할 길이 없다. 욕심을 잠재우지 못해 마음이 시끄럽다고 하면 웃기나 하겠지.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읽고 있다. 참 젊고 참 명민하다. 문장 하나하나를 읽어갈 때마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우리가 젊었을 때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가까이 다가가서 그것의 참모습을 본 사람들은 용감했던 만큼 괴로웠고, 다가갈 용기가 없어서 외면했던 이들은 스스로의 비겁함이 부끄러워서 역시 힘들었다. 실비아 플라스는 내가 아는 한 삶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들 중의 하나다. 누군가의 일기를 이렇게 사후에 출간하는 것 - 비록 문학적 가치가 뛰어나고 그 일기에 등장하는 이들이나 그 후손의 동의가 있어도 - 은 그 글을 쓴 이에 대한 폭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글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카뮈의 사후에 출간된 '최초의 인간'도 역시 그렇다. 작가의 엄격한 자기 검열을 거치지 않은 초기 원고를 묶어서 그대로 출판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 나라도 그녀를 지켜줘야 할 것 같은 어쭙잖은 생각과 번뜩이는 문장의 매력 사이에서 고민하는 읽기를 띄엄띄엄 이어가는 날.



책을 읽다가 가슴이 답답하거나 혹은 벅차오르는 때 나는 부엌으로 간다. 
 냉동실에  닭 가슴살 한 팩이 있었다.
닭꼬치를 해야겠네라고 생각은 했지만 꽁꽁 얼어붙은 닭 가슴살 한 팩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장에 갔다.
대파 한 단, 닭다리살 한 팩, 우유 한 팩을 샀다.



파와 파인애플, 닭살을 한 입 크기로 썰고
간장 1/4컵, 설탕 1 큰 술, 미림 1/4컵을 섞어 끓어오르면 불을 줄여 약간의 점도를 가진 소스를 만든다.
팬에 파와 파인애플을 구워내고 닭살도 굽는다. 넓적다리 살을 구울 때는 껍질 있는 쪽을 먼저 굽고 소스를 발라가며 구워 놓은 후에 꼬치에 끼워서 상에 올리기 전에 오븐의 그릴에 한 번 더 구워서 낸다.


 
이 일기는 물론 일기다운 흔하고 평범한 기능들을 지니고 있다. 삶을 기록하고, 추억을 간직하고, 내면의 삶을 공고히 하고, 세상에 자신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회의하게 될 때 의심을 쫓아내는...... 하지만 한 편으로 이 일기는 그런 기능을 훌쩍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p.17


오늘은  닭꼬치를 만들고 타르트를 구워내면서 읽기가 가져다준 두근거림을 이겨냈지만 아직도 책은 반 넘어 남아 있다. 내일도 무언가를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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