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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Apr 04. 2016

2016. 4.4
어떤 봄날

                                                                                                                아침에 머리 감고 나오던 딸내미가 갑자기 심술을 부립니다. 사는 게 뭐 이러냐고 툴툴거립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사는 게 사는 거냐고 심통을 부리더니 오늘은 학교를 안 간다고 합니다. 당연히 제 마음도 상했습니다. 머리 말리는 소리, 서랍 여닫는 소리마저도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들렸지요. 말은 그렇게 했어도 학교는 가더군요. 말을 건네는 사람마다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하소연합니다. 공부하는 사람도 돈 버는 사람도 살림하는 친구들도 모두들 그럽니다. 그래도 혹은 그렇다고 해서 어쩔 거냐고요. 그만 둘 수도 없는데 어쩔 겁니까? 산에 가서 헤매고 돌아다녔습니다.



봄이 오니 싹은 절로 나옵니다. 그 자리에 있는 줄도 몰랐던 싹들이 눈을 틔우더니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랍니다. 너무 기세가 등등하여 울 밖으로 쫓겨난 원추리며 베르가못, 민트들이 여봐란듯이 새싹을 냈습니다. 홍매와 명자나무는 곧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고 찔레와 장미는 하루하루 초록을 더해갑니다. 튤립도 앵초도 꽃봉오리를 올렸습니다. 기껏해야 며칠입니다. 비가 내리면 더 짧아집니다. 단지 며칠 동안의 호시절을 보내고 나면 사그라들 운명인 것을 저들도 알까요? 알면서도 어쩔 수 없으니 나도 모르겠다고 그냥 사는 것이라면, 될 대로 되라고 자신을 포기한 것이라면 조팝나무의 하얀 꽃송이가 그렇게 눈부시지는 않을 거예요. 꽃분홍색 홍매가 저렇게 당당해 보이지 않을 거란 말이지요. 꽃에서 지난겨울의 긴 침묵을 봅니다.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해 줄 말도 그리 없습니다. 엄마는 이미 그 시절을 지나왔지만 딸은 아직 엄마의 시간을 알지 못 합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사는 게 뭐 이러냐고 툴툴거릴 수도 있는 거지요. 사는 게 좋은 날보다 그저 그런 날들이 몇 배나 더 많고 심심하고 지루하고 우울하고 배 아프고 심술 나고 슬픈 날들이 많다는 걸 안다면 그리고 또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래도 사는 게 좋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미리 알 길이 없는 거지요. 살아보면 나중에 절로 알아지는 것들 중 하나일 거예요.



겨우 한다는 게 로즈메리 줄기를 싹둑 싹둑 잘라 넣고 오일에 버무린 닭을 굽는 거예요. 시간 맞춰 만든다고 채 녹지도 않은 닭을 씻어서 준비하고 오븐에 넣었는데 한잠 자고 나서야 다 식은 걸 먹습니다. 전쟁 같은 아니 지옥 같은 하루가 지났습니다. 여러분들은 괜찮으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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