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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Sep 28. 2016

꽃무릇 소풍 - 고창 선운사

                                                                                                                                                                                                                                                                          

이른 봄 겹겹의 초록빛 싹으로 봄을 여는 건 상사화의 싹이다. 튤립과 수선화의 새싹과 비슷한 시기에 나오지만 자라는 속도는 제일 빨라서 하루 봄볕에도 쑥쑥 자라는 모습이 보일 것 같은 게 바로 상사화다. 마당에 알록달록한 튤립이 한창일 때는 이미 초록색 이파리가 훌쩍 자라 성질 급한 무리는 하나씩 고개를 숙이고 노랗게 물이 들기 시작한다. 나른한 봄볕에 수선화는 지고 튤립의 꽃잎도 색이 바래고 다른 꽃들이 피어나기 전의 그 잠시 동안 마당은 심란한데 거기에 상사화 이파리의 풀어헤쳐진 모습이라니. 어차피 잎이 다 사그라들어 흔적도 없어진 이후에야 꽃대가 나오는 게 상사화가 아니던가. 해서 올해는 시들어가는 기색이 보이는 이파리만 보이면 바로 잘라버렸다. 성질 급하고 기다릴 줄 모르는 아줌마로 인해 산발한 늦봄의 내 주방 창밖풍경은 제법 짧게 지나갈 수 있었지만 그에 비례해서 가을 상사화도 짧았다. 서너 군데에서 무리 지어 피어나던 분홍 상사화는 올해 딱 한 대가 나왔다. 꽃은 서너 송이가 전부였다. 가혹한 벌이라고 생각했으나 내가 한 짓을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내 집 상사화는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절 집 꽃무릇을 보러 떠난 이야기다.



며칠 만에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가 고창 선운사의 꽃무릇 사진을 봤다. 어제 아침 알람은 5시 30분, 커피 한 병 만든 게 준비의 전부였다. 가볍게 떠났으나 생각보다 길은 멀고 날씨도 흐린 데다가 고속도로였다. 시끄럽고, 중간에 마음대로 차를 세울 수도 없는 데다가, 차갑고 딱딱한 느낌의 시멘트 바닥은 불친절하고, 높낮이도 없이 계속되는 소음은 견디기 어려워 내게 고속도로는 마치 고문 같은데 오늘따라 두 번이나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한 시간여를 더 달려야했다.



선운산 도립공원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붉은 꽃무릇의 무리가 보인다. 아침부터 내내 흐리던 하늘이 반짝 해를 내어놨다. 붉은 꽃을 따라가다 보니 선운사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난데없이 고함소리가 들린다.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들어가지 말아야지 거긴 왜 들어가느냐는 호통소리가 꽃무릇보다 먼저 나왔다. 꽃무릇을 보호하자는 팻말에서 머지않은 곳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가 있다.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데 들어간 이들이나 나오라고 소리치는 이들이나 부끄럽긴 매한가지다. 길을 건너 꽃밭 쪽으로 가려는데 또 시비 소리가 들린다. 선운사 경내에는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있음에도 들어가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하는데 그 이유가 가관이다. 여자들이니까 봐줘라, 날 더운데 걸어 다니기 뭣하니 차로 천천히 한 바퀴만 돌고 나오겠다, 또 한 번 부끄러웠는데 놀라운 건 어느 순간 그 차가 내 옆을 지나 안으로 유유히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꽃이 있어 금방 잊을 수 있었을까? 붉은 구름처럼 무리 지어 핀 꽃무릇이 행여 인간의 말을 알아들었을까 걱정스러웠다.



도솔천을 옆으로 하고 잠시 걸었다. 나는 지금보다 아주 조금만 더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은 다르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생겼다. 아주아주 조금만 더 자신을 대접해줘야겠다는 다짐도 몰래 해버렸다. 내 입술이 부르텄다는 사실에 대해 세상은 관심이 없지만 나는 아직 세상에 관심이 있으니 그게 바로 내가 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래야 웃어주고 손도 잡아줄 수 있으니까.



영화 '앙, 단팥 인생이야기'에서 도쿠에 할머니가 단팥을 만들면서 하는 말이 인상 깊었다. 단팥을 만드는 일은 팥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과 같다고 한 말, 이른 봄에 싹으로 시작해서 비를 맞고 햇볕에 목마른 여름을 지나 팥을 맺기까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 한다고 했던 장면이 오늘 꽃무릇 사이를 걸으면서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랬다. 그렇게 서두르면 안되는 거였다. 미친년 머리처럼 풀어헤쳐진 모양새면 좀 어떤가 말이다. 내 마당, 내 부엌 앞인데 누가 본다고, 이제 좀 풀어놓고 편하게 살면 될 일을. 내년에는 제대로 한 번 피워보자. 설마 올해 그 일 가지고 삐져서 상사화가 내년 봄에 싹을 안내고 사라지지는 않겠지.



어딜 가나 먹는 게 큰일이다. 금방 갈 줄 알고 빵 조각 하나도 준비하지 못한 오늘 같은 날은 더 그렇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남편이 챙긴 과자 부스러기를 씹으며 도착한 고창 선운사. 절 집 앞인데 장어식당이 대부분이다. 어찌어찌 들어간 식당은 건어물전 같은 냄새가 났다. 주문을 받으러 와서 비닐 식탁보를 깐다. 풀 먹인 모시보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청정 숲 속의 고아한 풍정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길을 가다가 허기를 면하려고 들른 밥집에서 보송하게 닦인 식탁에 맑은 물이 담긴 잔이 조용하게 놓이기만 해도 좋겠다. 내 지갑에서 나가는 지폐 한두 장이 그 정도의 값은 될 거라고 믿고 싶다. 저녁은 고창이 아니라 전주에서 먹었다.



내려가는 길에 시간을 많이 써버렸지만 돌아오는 길은 국도를 택했다. 날이 저물어 가로등이 켜진다. 이십 년도 훨씬 전의 어느 밤에 집으로 돌아가던 길, 아이가 하늘에 창문이 있다고 중얼거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아파트 공사 현장의 크레인에 밝혀진 불빛이었다. 그날 이후로 불빛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곳에서 하늘에 밝힌 별처럼 보이는 불빛을 만나면 나도 항상 속으로 중얼거린다. 하늘에 창문이 있다고. 오늘은 창문이 제법 많았다. 우린 그때 산본에 살았고 아이는 지금 기숙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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