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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Nov 29. 2016

주방 단상

                                                                           

1.
아침 부엌에 해가 들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저 말간 햇살을 그냥 보내버릴 순 없다는 생각에 그렇다. 그런 날엔 냉장고를 뒤지다가 영 마땅한 게 없으면 매일 먹는 토스트 대신 핫케이크라도 구워서 시럽을 듬뿍 뿌려야 울렁증이 가라앉는다. 



오늘은 마춤하게 버섯도 있고 샤워도우도 있고 레몬까지 있어서 좋았다. 비록 버섯을 꼭 짜지 않아 질척하게 볶아졌어도 버섯즙이 빵에 스며들어 그 맛이 더욱 부드러워지고, 찬물에 담갔다가 물기를 제거한 채소에 오일과 소금, 후추만 뿌린 초록 샐러드가 얼마나 싱그러웠는지 아침 식탁에 앉아서 오늘 날씨 풀이를 제대로 해냈다는 생각에 혼자 싱글벙글했다는 이야기.



2.
찬바람이 불면 털실뭉치를 가지고 노는 버릇이 있다. 서재를 정리하다가 두어해 전에 대바늘뜨기로 만든 찻주전자의 털옷을 발견했다. 날이 추워졌으니 마침 잘 되었다. 며칠 동안 눈을 부릅뜨고 뜨개질을 하던 모자 하나를 중도에 포기하고 풀어버린 참인데 생각도 않던 것을 다시 만나니 반갑고 반가워서 주섬주섬 차린 찻자리.



3.
다리도 낮고 등받이도 없는 작은 의자 하나를 주방에 가져다 두었다. 찻물이 끓기까지의 시간, 솥의 밥이 뜸드는 시간, 양파나 오이를 썰어 소금에 잠시 절이는 시간처럼 기다리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 그 작은 의자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싱크대에 바짝 붙여놓고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면 거기 또 하나의 세상이 펼쳐진다. 오늘 내가 앉아있던 시간은 밤. 유리창 너머로 저 아랫동네의 불빛이 반짝이며 넘어온다. 노랗고 붉은 불빛들이 주는 위안, 멀리 불을 밝힌 창안에서 인사가 건네져오는 듯하다. 오늘도 잘 살았어요. 당신도 그랬냐고 물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참 따스하다. 그대도 작은 의자 하나 가져다 두는 게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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