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오후의 따사로운 티타임
먹기.
하루에 세 번의 식사 외에도 중간중간 먹고 마신다. 과일도 먹고 과자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차도 마신다. 주스와 케이크와 사탕과 초콜릿과 그리고 또 이것저것..... 먹기가 중요하다지만 요즘만큼 먹기에 집중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먹으러 가기도 하고, 사가지고 와서 먹기도 하며, 만들어서도 먹는다. 많이 먹으니 설거지도 많지만.
내가 좋아하는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의 말미에는 저자 '장선용'님의 며느리가 쓴 시어머니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중 한 대목을 소개한다.
점심 때였는데 "냉면해 주랴? 아니면 만두, 국수?"하시는 물음에 간단히 먹자는 뜻에서 국수라고 대답했다. 봉투를 뜯고 국수를 삶는 것이 처음 할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머님께서는 밀가루로 국수 반죽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 p. 252
요즘 들어 자주 이 대목이 생각나는 건 아마도 내가 예전보다 많이 한가해진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시원한 국수가 먹고 싶으면 나박김치를 담그고 싶고, 향기롭고 뜨거운 차가 생각나면 곁들일 케이크나 타르트를 굽고 싶어서 주섬주섬 재료를 챙기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깨끗해서 단정하고, 작고 오동통해서 귀여운 티팟을 앞에 두고 사과 타르트를 떠올린 건 당연한 일! 타르트 쉘을 구워야 하니 싱크대 안 깊숙이 넣어져 있던 누름콩을 찾아내고 밀가루와 버터, 설탕과 바닐라 에센스, 사과와 시나몬 파우더, 크림치즈와 계란을 챙겨둔다.
오븐의 온도를 올리고 내려가며 타르트 쉘을 굽고 팔이 아프도록 크림치즈와 계란을 저어 필링을 만든다. 사과를 저미고 설탕과 시나몬 파우더를 뿌리면서 아직은 풋풋한 사과의 향기를 탐하고 시나몬 파우더의 향기에 빠져든다. 노릇하게 구워진 타르트 쉘에 치즈필링을 채우고 얇게 저민 사과 조각을 하나하나 돌려 모양을 내는 각각의 과정에 집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나몬향기가 주방에 가득해진다. 올해의 햇사과로 만든 첫 번째 애플 타르트다.
찻잔과 티팟을 고를 때마다 망설인다. 몇 개 되지 않는 티팟이지만 그날의 기분에 따라 손이 가는 게 매일 달라진다. 정교하고 섬세해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티팟에 차를 준비하고 싶은 날은 마음이 복잡해서 정리가 필요한 날이거나 혹은 기뻐서 축하하고 싶은 날, 스스로를 대접하고 싶은 날인 경우이고 보통의 날에는 때때마다 가장 손쉽게 꺼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걸 무심하게 꺼내어 사용하는 편이다.
차를 덜어 티팟에 담고 한 김 식힌 물을 부어 차를 우리는 시간은 짧지만 그 시간만큼은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으니 마음이 절로 가다듬어진다. 커피필터 위로 물을 붓는 것 만큼이나 집중이 필요한 시간.
손수 구운 애플 타르트, 마음을 다해 달인 차 한 잔 만큼 귀한 대접이 있을까 싶다.
찻주전자를 가까이하게 되는 계절이 왔다.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