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억

계절 사랑

by 라문숙

아침 저녁으로는 맨살에 오소소 소름이 돋지만 낮에는 한여름이 무색할 만큼 강한 햇볕과 높은 기온 때문에 마당의 식물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계절이다. 연두색 작은 이파리에 분홍색 꽃이 사랑스러웠던 찔레가 다시 피어나고 봄 한 철, 마당을 푸르게 물들였던 물망초도 봉오리를 물었다. 장마 지나고 사그라들었던 데이지와 분꽃이 있던 자리에서는 연둣빛 어린 싹들이 빼곡하게 올라온다. 아침마다 자욱한 안개가 온 마을을 감싸고 오후에는 뭉게구름이 둥실 떠 있는 하늘이 그만 푸른 바다처럼 높고 깊고 그윽한 날들이 다시 왔다. 남편과 아이가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고 나는 내 앞에 놓인 홀로의 시간이 기꺼워서 설렌다.



누가 어느 계절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겨울이라고 대답했다.

얼어붙어서 건드리면 쨍하고 금이 갈 것 같던 회색과 남색의 하늘, 코끝을 얼얼하게 하는 매운 바람, 골목 안을 휘몰아쳐서 갈색 먼지를 회오리치게 만드는 건조한 대기를 사랑했다. 눈이 내려 포근한 아침, 참새 발자국이 난 하얀 눈이 아침 햇살에 녹아 반짝이는 풍경을 좋아했던 소녀는 이제 강렬한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빨래를 널고 여름 오후의 매콤한 냄새 속에 숨어있는 한 줄기 바람의 청량함에 매혹당할 줄 아는 중년 여인이 되었다. 그렇다. 이제는 겨울만큼이나 여름도 연인 같다.

하긴 이제 누가 어느 계절을 좋아하느냐고 묻지도 않더라.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꾸는 꿈, 내가 아쉬워하는 것들을 누가 궁금해할 이유가 없는데도 아무라도 그 누군가가 되어서 내게 물었으면 좋겠다.

가을을 좋아하느냐고.



지난 주말의 짧은 나들이. 공주, 부여를 거쳐 한산에서 차를 돌렸다. 여전히 볕은 뜨거웠지만 성격 급한 나무들은 어느새 노란 기운이 돌고, 군데군데 색이 변하기 시작한 논들이 섞여있는 들판은 마치 퀼트 같았다. 이제 9월이니 바느질하기 좋은 계절이다. 밀린 퀼팅을 올 가을에는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려나?




간장 2 큰 술, 설탕 2 큰 술, 식초 2 큰 술, 고춧가루 1 큰 술, 까나리액젓 1 큰 술, 다진 파 2 큰 술, 다진 마늘 1/4 작은 술, 깨소금 1 큰 술을 섞어서 씻어 놓은 야채나 겉절이감 위에 뿌려내면 간단한 채소무침, 혹은 오리엔탈 풍 샐러드가 된다. 마당에서 상추나 치커리, 깻잎, 오이 등을 거둘 수 있을 때 종종 애용하는 방법이다. 가을이 오고 마당에서 얻을 수 있는 채소가 없어지면 한동안 상 차리기가 어렵다. 채소가 필요할 때마다 몇 장씩 뜯어서 상에 올리는 일에 익숙해지면 가게에서 사오는 것이 맘에 안 들기 마련이라 그렇다. 시간이 지나 싱싱하고 풋풋한 내 마당의 채소가 기억에서 멀어지면 다시 마트의 채소가 익숙해지리라.



처음 만들어 본 탕수육


포도잼 만들 때의 레몬즙 짜기


한산 모시관에서 떨어진 감 줍기



코바늘 뜨기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코바늘 뜨기는 생각만큼 예쁘게 안된다. 생각을 바꿔야지. 마음이 가야 예뻐지니까.



마당은 하루하루 모습이 바뀌어간다.

나갈 때마다 시들어 사그라지는 식물들을 뽑아내고 자르고 캐내기 때문이다.

조금씩 허전해지는 마당이 휑해질 즈음이면 9월도 다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