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당 곳곳에 갖은 씨앗들을 뿌려놓았다. 빈 화분들에도 흙을 채우고 씨앗을 흩뿌렸다. 씨앗 봉지를 들고 화분 앞에 쪼그려 앉으면 머릿속에서는 벌써 싹이 튼 모습들이 보였다. 키가 훌쩍 큰 아마의 청보라색 귀여운 꽃송이와 노란색 가지 꽃, 개양귀비의 하늘하늘한 꽃잎과 싱그러운 바질 향기까지 미리 맡을 수 있었다. 그때는 물론 내가 수국 옆에 어떤 씨앗을 뿌렸는지, 방울토마토 앞은 순무, 그 옆의 토분에는 루콜라와 파슬리를 심은 걸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뻔한 걸 설마 잊겠나 싶어서 이름표도 꽂아두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잊어버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가지고 있는 씨앗들의 종류가 많지 않아서 잊는다고 해도 기억하고 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긴 하다. 문제는 심은 사실조차 잊을까 하는 것인데 실제 내가 씨앗을 뿌린 곳의 흙을 뒤집어 남편이 쪽파를 심은 사실을 알았을 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두어 해 전에 주방공사를 할 때 도시가스 연결하시는 분이 가스자동 차단기를 설치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었다. 지금이야 정신이 온전하니 괜찮지만 나이 들어 할머니가 되면 가스불을 끄는 걸 자꾸 잊을 테니 미리 설치하라는 거였다. 쓸데없는 장치들이 주방에 들어오는 걸 경계하는 마음과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설마 그럴까 싶은 마음에 괜찮다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가스자동 차단기를 설치하는 날이 오겠구나 싶어 등줄기가 서늘했다. 하지만 아직은 느긋한지라 새싹들이 나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기특해서 모양이 비슷하고 그게 그것 같아 답답할 법도 하건만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주겠거니 그저 무럭무럭 자라기만 하라고 물만 열심히 주는 새에 어느덧 오월이 되었다.
2.
상차림은 매일 거기서 거기다. 아침은 계란과 토스트와 커피, 있는 과일을 낸다. 요즘은 토마토가 맛이 없는 철이라 오렌지와 아보카도가 번갈아 오른다. 점심은 남은 음식으로 대충 때우는데 냉동실의 떡이나 옥수수를 쪄서 먹거나 누룽지 말린 걸 끓여 신 김치와 먹기도 한다. 비빔국수나 칼국수, 수제비가 오르는 날은 성찬이다. 저녁은 가급적 제대로 먹고 싶지만 적당히 피곤한데다가 꾀가 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떻게 대충 때울 수 없을까 궁리하는 통에 식사시간이 늦어지기 일쑤다. 요즘은 마당에서 제법 채소들을 거둘 수 있어서 임기응변만으로도 푸짐한 식탁을 차릴 수 있어서 좋은데 우선 부추는 잘라서 전을 부친다. 부추와 함께 쪽파를 듬뿍 넣기도 한다. 너무 일찍 싹이 나는 바람에 제대로 자라지 못한 순무의 잎을 라면에 듬뿍 넣어서 기름기를 조금 중화시켜보기도 하고(물론 기분만이겠지만요) 곰취를 잘라서 된장찌개에 넣기도 한다. 상추는 단골로 상에 오르는데 주로 쌈장과 함께 내지만 간장과 식초, 고춧가루와 액젓을 섞어 만든 드레싱에 버무리거나 시저 샐러드에 로메인 대신 사용하기도 한다. 사실 올리브오일과 디종 머스터드, 소금, 후추만으로도 나무랄 데 없는 샐러드를 만들 수도 있다. 정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날에 남편에게 뭐가 먹고 싶으냐고, 어떤 음식이 맛있느냐고 묻는데 대답은 뭐 한결같다. 내가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나. 답답하기 그지없는 대답인데 한참 지나면 다시 묻곤 하는 나도 역시 바보다. 며칠 전 입맛이 없다는 동생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남이 만들어주는 음식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남편과 동생이 맛있어 하는 음식은 같은 거네 싶었다. 남이 해주는 음식. 실은 저도 그렇거든요!
3.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정교한 에세이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실비와 제롬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길래 책의 뒤표지를 보니 '소설'이란다(부끄럽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거의 없다. 대화도 없다. 흐름은 빠르고 묘사는 적확하다. 단숨에 빠져서 끝까지 읽었는데 꼭 우리들의 이야기 같았다.
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 안에 있었다.
그들을 타락시키고, 부패시켰으며 황폐화시켰다.
그들은 속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조롱하는 세상의 충실하고 고분고분한 소시민이었다.
기껏해야 부스러기밖에 얻지 못할 과자에
완전히 빠져 있는 꼴이었다.
욕망이라는 카테고리에 적어 넣을 수 있는 단어를 나열한다면 아마도 나의 목록은 한참 동안 이어질 것이다. 꿈을 꾸고 싸우다가 포기하고 타협하는 삶, 꿈같은 건 사실 벽장이나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트렁크에 넣어서 보이지 않게 보관해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나도 그런 걸 가지고 있었노라고, 한때는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노라고, 차마 버릴 수는 없어서 가지고는 있지만 점점 찾아보는 것도 뜸해지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게 있었다는 걸 못내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 꿈인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행복해지고만 싶은 우리들의 빈한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게 쓰일 수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보세요.
4.
표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사람에게 옷이 날개라면 책의 날개는 표지인 셈이다. 책의 표지에 관한 이야기를 당신과 나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가는 줌파 라히리의 탁월한 에세이 '책이 입은 옷'을 읽다가 이 년 전에 세상에 나온 '안녕하세요'를 떠올렸다. 나는 그 책이 실용서로 분류되고 있다는 사실에 여전히 죄책감을 느낀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실용적인 내용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렇다. 나는 여전히 잡초와 화초를 구분하지 못하고 물 주는 시기며, 씨앗과 구근을 갈무리하고, 열매와 뿌리채소를 기르는데 젬병인데다가 요리는 요리책이 없으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생초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책은 전혀 실용서 답지 않은 외관을 가졌다. 뒤표지를 보지 않으면 그 책이 어떤 책인지 알 길은 사실 전무하지 않은가. 찻잔과 찻주전자, 그리고 '안녕하세요'라는 제목에서 사람들은 어떤 걸 연상할 수 있었을까 싶은 거다. 책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흥분해서 마무리까지 정교하게 해내지 못한 게 아닌가 한다. 하긴 그 사실만으로 정말 대단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좀 생뚱맞지만 그렇게 애매모호한 표지를 가진 책을 선택해서 읽어주신 분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5.
어두워진 후에 마당에 나와 불이 켜진 집안을 바라보면 신기하다. 저 안에서 내가 종일 왔다갔다하고 말하며 웃고 물을 끓이고 음식을 먹었구나 생각하니 만약 누군가 밖에서 집안의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다면 어쩌면 그저 그런 소설책 한 권을 읽는 것 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더 재미있게 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그건 그렇고 문득 깨달은 사실이 한 가지 있는데 올해는 소쩍새가 마을 뒷산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게 그거다. 소쩍새뿐만 아니라 뻐꾸기도 그렇다. 해마다 숲이 조금씩 줄어들다가 작년에 집 위쪽의 숲이 뭉텅 잘려나간 게 원인일지도 모른다. 명목은 나무들이 너무 늙어서 새로운 나무들로 바꿔 심는 중이라고 하였으나 마을 사람들 중 그 말을 믿는 이들은 없지 않을까. 제법 굵은 나무들이 울창했던 곳이 지금은 말라죽어가는 어린 묘목들이 드물게 선 양지바른 빈터가 되었다. 소쩍새와 뻐꾸기들은 실망했음이 틀림없다. 역시 사람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가 보다고, 어리석은 이들과는 함께 지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곳을 떠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쉽고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드니 어제보다 조금 더 살찐 달이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