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은 명목상 서재다. 주방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방이라 하루에도 수십 번, 문이 열려 있는 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낮에는 좀처럼 들어갈 짬이 없다. 세탁실과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둔 게 전부라 책상 앞에 앉아서도 세탁이 끝났음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냉장고에 붙여둔 알람이 울리면 몇 걸음 만에 해제 버튼을 누를 수 있는 방,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다가 요리책이 필요한 순간 가장 빨리 찾아낼 수 있도록 문에서 제일 가까운 곳 책장에 자주 보는 요리책들을 꽂아놓은 방이기도 하다. 정리하기 전의 택배 상자와 온갖 우편물들이 모이는 방이고, 외출했다 돌아와 미처 옷걸이에 걸지 못한 겉옷들이 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진, 집에서 가장 어두운 방이다.
그러나 종일 창고처럼 쓰이던 방은 밤이 되면 나만의 방이 된다. 흐트러진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종일 혹사한 신경을 누그러뜨린다. 그제야 내가 느껴진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절로 한숨이 나는 이유일 것이다. 하루치의 긴장을 풀고 하루치의 도락을 시작하는 시간, 그러나 밤은 이미 너무 깊었다. 내일 피곤해하지 않으려면 잠들어야 할 거라고 내 안의 다른 내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커다란 책상을 넣어둔 지 벌써 오래전이다. 펼쳐진 채 책상 위에 놓인 책은 며칠째 페이지가 거기서 거기다. 집 안 곳곳에 읽고 있는 책들이 있지만 신기하게도 책상 위에 반듯하게 놓인 책의 진도가 제일 느리다. 주부와 읽고 쓰는 사람간의 거리가 이렇게 멀구나 싶다. 무 한 토막 잘라내듯이 하루에 몇 시간만 잘라내서 읽고 쓰는 데 사용하자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이 방에서 내가 제일 많이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기’다.
하루를 끝낼 즈음에는 고요가 그립다. 내가 바라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일치하기를 바라는 게 한낱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구태여 하나하나 설명하는 수고까지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 나는 소외되고 오해받기 일쑤다. 이해와 수용에 인색한 하루를 보내야 하는 날이면 방에 들어갈 시간이 저만큼 물러났지만 그래도 지고 싶지 않았다. 명절이나 제사처럼 일이 많은 날이나 이런저런 일들로 몸도 마음도 치어서 버티기 어려운 날에는 일을 하다가도 방으로 들어와서 손에 닿는 아무 책이나 꺼내 들고 바닥에 주저앉아 책을 읽었다. 장바구니 속 냉동식품이 녹을지도 모르고, 접다 만 타월 무더기가 열어놓은 방문 밖으로 흘낏 보여도 모르는 척했다. 냉동식품이나 타월 따위와 겨룬 것도, 자신을 지킨다든가 스스로 위하지 않으면 어쩌겠는가란 생각을 한 것도 아니다. 다만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부서져버릴 것 같아서였다.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어쩔 도리가 없음’이란 말로 대표되는 방치, 혹은 외면이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집안일, 살림이란 이름이 붙은 일들이 주부에 게 가혹한 이유는 좀처럼 그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데 있다. 어렵지 않아도 매일 일정량의 시간을 바쳐야 하는 집안일들,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과 제사와 그 밖의 경조사들 외에는 기대할 무엇도 없는 생활, 어느 날 그게 나를 둘러싼 세계의 전부인 것을 알아채는 것은 슬프다.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들먹이지 않아도 주부라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온몸으로 안다. 그런 자각은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자신의 방이 있고 없고를 넘어서는 것, 바로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 상태를 계속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어야만 하는 막막함으로 이어진다.
처음 책장과 책상을 들일 때는 소박한 나만의 서재를 꿈꿨다. 내리 몇 시간을 앉아서 읽고 또 읽는 것, 읽는 즐거움에 필적할 만한 것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직 내 방은 휴식의 공간으로 주로 쓰인다. 창을 열고 앉아 있거나 고개를 떨구고 졸면서 보내는 시간도 적지 않다. 멍하니 앉아서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거나, 무엇이 될지 모르는 뜨개질감을 다시 잡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라앉는 걸 느낀다. 휴식이란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여 좋아하는 일에 마음을 쏟는 것이라는 사 실도 이 방에서 알았다.
가능하면 많이 읽고 싶다. 짧을지언정 매일 쓰려고 노력한다.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열어서 입력해둔 단어나 문장들을 재료 삼아 짧은 글을 쓰기도 하지만 고개를 떨구고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훨씬 많다. 피곤할 테니, 토막난 시간이니 어쩔 수 없겠다고 이해는 하지만, 사실 그건 또 한 번의 방치다. 왜 나는 책상 앞에서의 시간을 줄이는 대신 집안일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지 않는 것인가? 내일 또 해야 하는 일, 오늘 하루 정도는 손을 놔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점점 자주 하는 자신을 본다.
밤에 내 방에 홀로 있는 건 조금씩이라도 용기를 키우는 일이다. 비록 지금은 온전히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언젠가 내게 무엇인가 가능해진다면 그건 바로 나의 방 덕분일 것이다. 이 방에서 보내는 조각 난 시간들은 버지니아 울프가 썼듯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 두려움과 쓰라림을 연민과 관용으로 바꾸고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는 자유”를 얻기 위한 밑거름이 될 테니까.
그리하여 언젠가는 바로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