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 매일 오는 여자들
써야 할 원고가 밀려 있다. 어쩌다 보니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진행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것이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원고를 다듬고 고치는 일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날은 점점 더워졌다. 낮 동안 더위와 싸우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쓰기에 적합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렸고 밤은 짧았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로그인을 하는 순간, 하루치의 세상사가 우르르 쏟아졌다. 이런저런 메일과 청구서들이 주부에서 글 쓰는 사람으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나마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라 다행이라고 중얼거리며 송금을 하고, 물건을 사고, 편지를 쓰고 나면 어느새 밤이 깊었다.
몸이 피곤하면 마음도 잠이 드는 법이다. 아무래도 밤에 쓰는 것만으로는 원고를 제때 쓸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락 걱정이 되었다.
불가피한 외출이 아니면 약속을 잡지 않았다. 장보기도 풀 뽑기도 꼭 필요하지 않으면 미뤘다. 틈만 나면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읽고, 지우고, 썼다. 핸드폰은 항상 옆에 두었다. 갑자기 생각난 단어들과 문장들을 녹음하고 메모하기 위해서였다. 누가 보면 스마트폰에 중독된 여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저녁이면 메모장에 쓰인 단어와 문장들을 씨앗 삼아 글을 썼다. 개중에는 그걸 왜 적어놓았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단어들도 있었다. 토막토막 조각이 난 글들을 이어 붙여 한 편의 글로 만들었다. 조금씩 원고가 늘어났다. 어느 날, 컴퓨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가 생겼고 원고 일부를 잃었다. 많은 날들의 수고가 사라졌다. 마음이 급해졌다.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메모를 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다시 말해 항상 선택을 해야 하니까. 나는 너무 졸려서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글쓰기는 결코 쉬운 재주가 아니다. 무엇을 쓸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는 쉬워 보이지만, 그 생각은 증발해서 여기저기로 날아가버린다.
버지니아 울프, 《어느 작가의 일기》, p.36
메모는 넘쳐났지만 어디에서 시작하고 무엇을 넣고 뺄지 선택하는 건 어려웠다. 여러 번 첫 문장을 썼으나 마무리를 못한 글들이 계속 버려졌다. 문장 하나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면서 두어 시간을 흘려보낼 때도 있었다. 그래 봤자 신통치 못한 몇 줄일 뿐인데도 시간은 쏜 화살처럼 날아서 사라졌다.
엘리스 먼로의 단편소설 《작업실》의 주인공은 삶을 해결할 방법으로 ‘작업실’을 떠올린다. 마치 자기가 글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로서 역량이 부족한 게 아니라 단지 글을 쓸 시간과 세상과 격리되어 홀로 있을 공간이 없기 때문이라는 듯이. 그녀는 작가이고 아내이자 엄마였다. 나도 그녀 흉내를 내보기로 했다. 어느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식구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간단하지만 뻔뻔스러운’ 일이었다.
“아무래도 집에서는 원고를 쓸 수가 없네. 점심 먹고 카페라도 가서 글을 쓰고 저녁 전에 돌아올게요.”
‘간단하지만’ 꺼내기 쉬운 말은 아니었고, ‘뻔뻔스럽지만’ 집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나기를 기다리기에는 내가 너무 급했다.
내가 듣기에도 허황한 소리였다. 구태여 작업실을 얻어야 할 까닭이 뭔가. 집이 있잖은가. 쾌적하고 널찍하고 바다가 훤히 보이니 전망도 좋고, 맞춤한 식당과 침실과 욕실에다 친구들과 담소를 즐길 공간도 있다. 게다가 정원까지 있으니 공간이 없어서 작업을 못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앨리스 먼로, 《행복한 그림자의 춤》, p.11
나도 집이 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방에 책상과 의자와 숲이 보이는 창문까지 있다. 게다가 몇 발짝만 움직이면 마당에 나갈 수도 있으니 나 역시 공간이 없어서 글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잔뜩 제멋에 겨워 유난을 떠는, 같잖은 요구처럼 들리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글을 쓰는 데는, 누구나 알다시피, 타자기나 여의치 않을 경우 연필 한 자루와 종이 몇 장에 책상과 의자가 있으면 그만이다. 이것들은 내 침실 한 귀퉁이에 죄다 있다. 그런데도 지금 나는 언감생심 작업실까지 욕심내고 있다. 앨리스 먼로, 《행복한 그림자의 춤》, p.12
평온하고 정돈된 집은 안락하고 쾌적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보송하게 말려 반듯하게 접은 타월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젖은 채로 빨래 바구니에 담길 테고, 말끔하게 정리한 책상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책과 광고지와 온갖 청구서와 영수증들로 뒤덮일 것이다. 두어 시간을 쏟아부었던 음식들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 일들을 매일 다시 해야한다는 게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아침마다 하루가 새로 주어지다니, 이렇게 너그러운 동시에 소모적일 수가 있을까 싶다. 어차피 인생 전체가 매일 먹는 밥처럼 되풀이되는 날들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바로 그 지점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하여금 나를 닮게 하는 것. 자신을 다듬듯이 집을 꾸미고 정리하다 보면 언젠가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했으니, 그때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일까.
《작업실》의 주인공은 남편으로부터 “쌈직한 거 있으면 그러든지”라는 대답을 듣지만 개운하지 않다.
반승낙을 받아놓고도 그건 이룰 수 없는 소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 밑바닥에서 바랄 것을 바라야 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밍크코트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바랐다면 오히려 쉽사리 뜻을 이루었을 터였다. 모름지기 여자라면 그런 것들을 얻으려 한다고 믿으니까. 내 계획을 알고 나서 아이들은 내가 세상에서 둘도 없이 허무맹랑한 일에 덤벼들기라도 한 것처럼 콧방귀를 뀌었다.
앨리스 먼로, 《행복한 그림자의 춤》, p.14
남편과 아이는 시큰둥하지도 콧방귀를 뀌지도 않았다. 오히려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고 했다. 집에서 머지않은 곳에 스타벅스가 새로 문을 열었다. 번화한 곳이 아니어서 한적한 편이었다. 나는 점심식사 후에 집을 나와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서너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왜 그 말이 그렇게 쉽지 않았을까? 나로서도 글을 쓰러 몇 시간 나갔다 오겠다는 말보다 뭔가 다른 것을 바란다는 말이 더 쉬웠을 것이다. 글은 항상 그랬으니까. 해야 할 일을 다 한 후에, 다른 일에 지장이 없는 한에서, 티 내지 않고 혼자 해내는 여분의 무엇이었다. 실제로 글쓰기를 위한 하루 서너 시간의 외출은 그보다 중요한 다른 일들에 종종 치인다. 주부의 일은 대부분 끝이 없고 미리 해둘 수도 없는 일이라 겉으로 보기에는 한가해 보여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기 마련이다.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속에서 발을 계속 움직이고 있는 오리처럼. 나로서는 발목에 '쓰기'란 모래주머니를 하나 더 단 셈이었으니, 어떻게든 가라앉지 않으려면 보다 더 부지런히 발을 놀려야 하는 것이다.
남편과 아이에게 집은 물건과 같다.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집을 이용한 후 마음대로 나가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집은 편리하고 쾌적하고 편안하면 된다. 그러나 주부인 내게 집은 그런 게 아니다. 나는 때로 집이 힘들어하고 우울해한다는 걸 안다. 집은 끊임없이 호소하고 보채며 종종 토라지기도 한다. 나는 종종 집에서 벗어나기를 꿈꾸지만 며칠 떠나 있으면 집이 궁금하고 그립다. 집과 내가 서로 닮아간다는 것도 안다. 끊임없이 가구를 옮기고 정리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나는 여전히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싶다. 그렇다. 집은 곧 나다.
스타벅스에는 나처럼 매일 오는 여자들이 많다. 그들은 거기 앉아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 안의 세상을 부유한다. 수를 놓거나 뜨개질을 하는 이도 있다. 물론 나처럼 자판을 톡톡 두드리기도 한다. 그들은 왜 평일 낮 시간에 집에서 나왔을까? 집은 왜 혼자 있는 시간마저도 주부들을 편하게 놓아주지 않는 것일까? 집이 다정한 연인처럼 말을 걸어올 때마다 차마 외면하지 못했던 시간을 그들도 보냈을 것이다. 미처 끝내지 못한 집안일들을 아랑곳하지 않기 위해서는 집에서 나와야 한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일 것이다. 버릇처럼 내 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에 관하여 자주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 역시 오후 서너 시에 집에 있었다면 귓가에 식구들이 돌아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마른 세탁물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넣어두고 쌀을 미리 씻어 불려둬야 밥이 보드랍게 지어진다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매일 되풀이하는 집과의 밀고 당기기가 다시 시작되는 시간, 나는 지금 스타벅스에 있다. 집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닿지 않는 곳에. 집에 돌아가기로 한 다섯 시까지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움직이지 않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