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매일의 글쓰기가 가져온 선물

당신도 써보세요

by 라문숙



책이 나오면 삶이 바뀔 줄 알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첫 번째 책이 배달된 날에도 나는 주방에서 국수를 삶고 그늘에 숨어 풀을 뽑았다. 나를 그렇게 설레게 하던 책은 택배 상자에서 나오지 못하고 식탁 위에 놓여 한동안 기다려야 했다. 주문한 책이 도착하면 나는 언제가 됐든 하던 일을 멈추고 상자부터 뜯는 사람이었다. 테이프를 잡아 뜯고 상자를 열면 거기 내 책이 있을 터였지만 웬일인지 보고 싶지 않았다. 상자를 열고 책을 꺼내 읽어 내려가며 내가 발견하게 될 나의 모습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것을 예감했다. 적어도 친구가 물어봤던 대로 “살고 싶던 대로 살고 있는 나”는 아닐 것이었다.


“책, 안 열어볼 거야?”


남편의 그 말에 못 이기는 척 상자를 뜯었다.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처음 책을 만들기 시작할 때 편집자와 얘기했던 그대로 1년 넘게 놀았던 시간이 책 속의 시간보다 더 내가 살고 싶은 모습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책 속에 보이는 내 모습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의심하지 않던 시절의 나였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대충이라도 알게 된 것이 첫 번째 책을 만들면서 내가 얻은 수확이었지만, 실체는 여전히 명확히 잡히지 않았다. 더 답답하고 한층 막막했다.


어느 날, 주방에서 다듬고 있던 가지 꼭지의 가시에 손가락을 찔렸다. 움찔하는 순간에 어렸을 때 엄마가 금방 딴 가지를 먹으라고 잘라줬던 기억이 났다. 반짝거리는 진보라색 껍질이 매끄러운 작은 가지였다. 서늘한 연둣빛이 감도는 속살, 가지 특유의 비릿한 냄새, 먹히기를 거부하는 것 같은 탄력감, 그 날 내가 입고 있었던 원피스가 바람에 날렸던 것까지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손에 가지를 쥔 채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내 속에서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용광로처럼 들끓었다. 어디라도 앉으면 가지를 소재로 글 한 편을 뚝딱 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저녁 준비를 하다 말고 펜을 들거나 노트북을 열고 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답답한 시절이었다. 밥을 하고 청소를 하면서도 단어와 문장들이 불쑥불쑥 나왔다. 그때는 글만 쓰고 싶었다. 집안일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자잘한 일들은 종일 끊이지 않았고, 전날 해치운 일들을 다음날 아침이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나는 매일 하루치의 피곤함과 싸웠고, 그리고 졌다.


쓴다는 것은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 되지 않았다. 매일 다짐하고 매일 실패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자신과의 약속은 너무나 깨트리기 쉬운 것이어서 시간이 지나자 나는 최소한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그날그날 닥치는 대로 살았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차츰 뒤로 물러갔다가 순간 돌아와 나를 잠시 건드려놓곤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3시의 나》란 책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저자가 1년 동안 매일 오후 3시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그림과 짧은 글로 엮은 것이라고 했다. 이거다 싶었다. 앞뒤 생각 안 하고 1년 동안 매일 오후 3시에 글을 쓰겠다고 블로그에 올렸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그게 가능할지는 따져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것은 어떤 구실을 대서라도 글쓰기를 멈추면 안 되겠다는 것과 쓰는 습관을 기르기에 ‘오후 3시의 일상’이라는 글감이 참으로 적절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오후 3시라면 점심과 저녁 사이, 하루 중 가장 한가한 시간이 아닌가, 잠시 짬을 내어 자신과 주변에 관해 두어 단락을 쓴다는 건 숙제가 아니라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마시는 것처럼 나른한 몸과 마음을 깨우는 일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그때의 내 생각이 얼마나 대단한 착각이었고 무모한 시도였는지를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후 3시에 알람을 설정했다. 제일 먼저 알게 된 것은 알람이 울릴 때 바로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던 날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매일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 며칠은 알람이 울릴 때마다 매일 오후 3시에 글을 쓰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출 수 있다니 얼마나 근사한 휴식인가 생각도 해 봤지만, 그건 억지였다. 쌀을 씻다가, 책을 읽다가, 빨래를 널다가, 낮잠을 자다가, 운전을 하다가 알람을 꺼야 했다. 매일 오후 3시에 글을 올리겠다는 약속은 지킬 수 없었다. 오후 3시는 오후 5시가 되고 오후 7시, 오후 9시도 되었다가 자정을 겨우 10분 남긴 11시 50분이 되기도 했다.

오후 3시를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게 되자 가슴이 철렁했다. 게다가 1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글을 올릴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어쩌나란 생각에 겁이 났다. 어떻게든 글을 쓰는 일상을 지키고 싶었다. 별일이 생기면 안 되겠기에 나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내 하루는 의외로 드라마틱했다. 하루를 살아나가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엮여 있는지, 인내와 희생이 뒤따르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매사 조심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알 수 없는 것은 곁에 있는 사람들이 다정하고 평온했던 날, 오히려 쓰기가 더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감정이 파닥거리던 날, 손가락은 더 빨라지곤 했다. 시간은 지킬 수 없었고 퇴고를 할 수도 없었지만 글을 올리기로 한 건 무엇에도 양보하 지 않았다. 신데렐라처럼 12시 종이 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썼다. 여행 중에도, 제삿날에도, 속절없이 아프고 슬펐던 날에도. 그렇게 매일 글을 썼다. 365일, 1년 동안.



1년 동안의 글쓰기가 끝난 날,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좋아서 한 일이었다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숙제처럼 여겨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였다. ‘오후 3시’를 마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제 쓰고 싶은 마음이 마구 솟구칠 때까지 아무것도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지 만, 그 기간은 의외로 짧았다. 글쓰기의 힘을 이미 알아차린 탓이었다.


모호했던 일상이 글로 쓰이는 순간에 선명해지고 혼란스러웠던 감정의 정체가 드러났다. 막연한 불안감도 글로 쓰면 한두 문장으로 요약이 되곤 했다. 삶이 이렇게 선명해도 되는 건지 불안하기까지 했다. 있는지도 몰랐던 것을 보이게 하는 언어의 힘에 압도당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모니터에 찍히는 글자들을 보면서 ‘맞아. 저 말이 하고 싶었어’라 고 외쳤던 몇 년 전의 내가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여전히 내 속에 숨어 있는 말들을 끄집어내느라 늦은 밤까지 깨어 있곤 한다. 내가 읽는 글자 너머에 있는 것들을 헤아리는 연습을 하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들, 설레게 하는 것들, 의심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 분노와 염려, 기대와 슬픔들을 글 속에 가둔다.

하루, 때로 며칠 동안 가슴을 짓눌렀던 감정들을 한바탕 쓰고 나면 삶과 내가 다시 보인다. 그렇게 조금씩 느긋해지고 단단해진다. 글쓰기가 주는 선물이다.

이전 02화매일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