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작가의 시작

by 라문숙


책을 읽는 것은 좋았지만 내가 책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블로그를 열었으나 그건 일종의 낙서장 같은 거였다. 처음에는 마치 새로 장만한 수첩에 오늘 할 일, 언젠가 하고 싶은 일,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일들을 채워 넣듯이 앞으로의 계획을 나열한 비공개 메모들이 대부분이었다. 며칠에 한 번씩 밀린 일기를 쓰는 것처럼 블로그 창을 열었다. 처음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웅얼거리듯이 불만을 털어놓고, 화내고, 포기하고, 반성하고 다짐했다. 글은 어설프고 내 맘대로여서 누군가 그 두서없는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거나 코멘트를 남기면 신기했다. 댓글들은 대부분 다정하고 살가워서 가끔은 댓글을 읽고 답변을 쓰던 중 울컥해서 또 다른 글을 쓰기도 했다.


내가 하는 말을 누군가가 귀 기울여 듣는 풍경을 연상했다. 몇몇 이웃들이 내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고 종종 말 너머에 숨어 있는 감정까지 알아준다는 느낌은 일종의 중독이었다. 댓글을 보고 있으면 고개의 끄덕임이 느껴졌다. 그건 일종의 공모 같은 거였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버벅대고 있는 내게 그렇게 애써서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우린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너그러움마저 있었다. 어느새 블로그에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었다. 블로그에 쓰는 글은 식구들과 식탁에서 나누는 이야기들과 달랐다. 남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주로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는 입장이지만 모니터를 앞에 두고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내가 앞으로 나왔다. 그렇게 쓴 글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드문드문 출간 제의가 들어왔다.


“책이라니, 그런 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내 글로 어떤 책을 만드실 건가요?”

“구체적인 계획을 알려주세요.”


글을 엮어 책을 내주겠다는 이들에게 나는 되물었다.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라는 막연한 감 정도만을 가지고 있던 내게, 내가 쓴 글은 한참 함량 미달이었다. 몇몇 블로거들의 출간 소식을 들었으나 그들과 나 사이에 공통점은 거의 없었다. 나는 평범하고 게으른 주제에 고집 센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출간 제의에 내가 보낸 답장은 종종 너무 냉소적이어서 다시 연락이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더라도 뜬구름 잡듯 황당한 답변이거나 자비 출판을 권유하거나 내 글을 읽기는 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도 있었고, 좀 더 두고 보자는 답변도 있었다.


출간 제안이라는 제목을 달고 메일이 와도 별일 아니란 생각이 들어 눈여겨보지 않게 되었을 즈음 하나의 메일을 또 받았다. 나는 이번에도 무슨 책을 어떻게 만들 거냐는 의 례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이제까지와는 다른 답변을 받았다. 어떤 책을 구상하고 있느냐 물은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책의 기획이 시작되고 책이 나 오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된다고, 1년 이상이 걸릴 테지만 서둘고 싶지 않다고,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을 맞춰가며 책을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겠지만 출간 과정을 재미난 놀이같이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때 한바탕 울고 있던 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정색을 하고 던진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 잘 살고 있는 거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있는 거야?”

“살고 싶었던 대로 살고 있는 게 맞아?”


고등학교 입학식 날 만나 지금껏 곁에 그림자처럼 있어준 친구였다. 그녀의 질문은 질문이라기보다 질책에 가까웠다. 살고 싶었던 대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혹시 자기가 잘못 본 게 아니냐고 묻는 거였다. 나는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그날부터 남을 보듯이 자신을 봤다. 평소처럼 살림을 했다. 몸은 주방에 있지만 정신은 엉뚱한 곳에 가 있기 일쑤였다. 보기에는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허수아비 같았다. 욕실에서 세수를 할 때마다 무너졌다. 입으로는 밥하기 싫다, 살림하기 싫다고 떠들면서 실제 밥 안 하고 살림을 안 하면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도 안해본 거였다. 기가 막혔다. 겁도 났다. 잘 살고 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 게 당연했다. 여태 뭐하고 살았을까, 앞으로는 또 어떻게 살까란 생각에 잠을 못 이뤘다. 뭔가 해야겠다 싶었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어서 밤마다 울던 때였다.


매일 모든 게 시들했다. 언제나처럼 남편은 직장에, 아이는 학교로 갔다. 마당의 꽃과 나무들은 자라서 꽃 피고 열매를 맺었지만 나는 항상 그 자리에 머물렀다. 거울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날, 눈에 띄는 잔주름과 염색할 때가 지난 희끗한 머리카락, 혈관이 도드라져 보이는 손등을 바라보면서, 나는 우울했다.


그런 날들을 하루하루 지워가고 있을 때 받은 메일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미있는 놀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쏙 들어왔다. 그것도 1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다니! 여러 가지를 고려해봐야 한다니, 누군가와 생각을 맞추고 얘기를 나누면서 1년 넘게 놀 수 있다니, 하늘에서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온 것 같았다.


편집자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었다. 언덕을 내려가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를 찾아갔다. 전철역 출구를 잘못 찾아 들어갔다 다시 나오기를 거듭했다. 작은 식당에서 파스타 접시와 커피잔을 앞에 두고 책 이야기를 나눴다. 그이가 그날 어떤 말을 했더라도 나는 좋다 고 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말에 그이는 그저 지금처럼 사는 모습을 블로그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겁게 살면 된다고 말해줬다. 헤어지는 내게 자신이 만든 책도 한 아름 안겨줬다. 책이 든 쇼핑백은 무거웠고 집까지는 먼 길이었지만, 나는 실로 오랜만에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오는 길에 친구에게 책을 만들거라는 카톡을 보냈다. 고맙다는 말도 했던 것 같다.


원고 정리를 해야 했지만 어렵지 않았다. 이미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글들을 모아 맥락에 맞게 정리하는 게 전부였다. 간혹 몇 문장씩 써넣을 필요가 있는 글도 있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놀라운 경험을 한 것도 바로 그즈음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장들이 써졌다. 마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 끝에서 문장이 만들어지는 것 같 았다. 모니터에 활자들이 박히는 걸 보고서야 아, 맞아. 나 저런 말을 하고 싶었어,라고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밤마다 앉아서 예전에 써둔 내 글을 읽고 고쳐 쓰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아직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을 꿈꿨는지, 무엇을 잊었는지도 모른 채로 어른이 되어서는 결혼을 했고, 매일 쌀을 씻고, 채소를 다듬고, 청소를 하면서 살아왔던 나였다.


원고 정리를 하면서야 내가 읽고 쓰기를 좋아한다는 걸, 어쩌면 바로 그 일이 내가 앞으로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다. 책을 만드는 건, 더군다나 첫 책을 만드는 건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스스로를 알고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상태의 문제가 아니라 과정의 문제인 것도 배웠다.


지금도 가끔 친구가 내게 질문을 던졌던 날을 기억한다. 낯선 편집자에게서 받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즐거운 놀이를 하듯 책을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메일을 가끔 읽어본다. 당시의 내 모습을 의심했던 친구와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 편집자에게 감사한다. 친구는 내게 머물지 말라고 등을 떠밀어줬고, 편집자는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질문에 답을 못해서 쩔쩔맸던 나를, 몇날며칠을 흘렸던 눈물을 생각한다.

지켜봐 주는 이가 있는 이들은 행복하고,

나는 내가 그중 하나였음을 지금도 다행스럽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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