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새겨진 것을 쓰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by 라문숙



제사는 음력으로 지내므로 해마다 앞뒤로 조금씩 변화가 있다. 초복과 중복 사이, 즉 1년 중 가장 더운 때다. 종일 불 앞에서 끓이고 삶고 볶고 지져낸다. 바람이 불면 가스레인지의 불길이 제멋대로 춤을 추다가 꺼져버리므로 선풍기는 사용할 수 없다. 한여름에도 좀처럼 더워하는 표가 잘 안나서 사람들에게 정말 덥지 않은 거냐는 소리도 종종 들었건만, 40도 가까이 치솟은 폭염의 부엌에서는 그런 나라도 머리카락 사이에서 솟은 땀이 눈 안으로 흘러들어 가고 젖은 옷이 살갗에 들러붙는다.


햇볕이 마당에 부서지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릴 것만 같다. 채소를 다듬고 전을 부치면서 익어가는 마당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본다. 몽롱한 여름 한낮의 햇살은 굳어져가는 젤리처럼 무겁다. 쪽파나 풋고추가 필요해서 마당으로 향하는 문을 열면 샴페인처럼 농익은 시간이 출렁거렸다. 울타리 밖에서 강아지풀, 개망초, 엉겅퀴가 묵묵히 여름을 견딘다. 햇볕이 강한 만큼 그늘도 짙어서 잠시 그 아래 숨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한 손에 쥔 쪽파를 옆에 내려놓고 앉아서 장미 주위의 잡초들을 뽑기 시작한다. 뜨거운 공기가 호수처럼 고여 있는 마당에 간혹 바람이 불어온다. 시원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넘볼 수 없는 청량함이다.

매일 같은 날인데 생일이나 제사가 끼어 있으면 마치 소설의 한 장이 끝나는 것처럼 나른하다. 삶의 한 지점을 무사히 통과한 것 같은 기분 좋은 피로감에 더위를 잊는 것이다.


시아버지 제사와 시어머니 생신을 넘어가면 남은 여름은 방학 같다. 마당에서는 벌들이 붕붕거리고 공기에서는 매콤한 햇빛 냄새가 난다. 추석이 올 때까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지켜야 할 것도, 돌아가야 할 현실도 아직은 멀기만 해 그저 뒹굴며 마음껏 고독해도 좋은 여름날에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을 읽는다.


네 살 때부터라고 한다. 병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읽기에 빠졌던 작가는 여전히 다른 무엇인가를 하는 대신 계속 읽고 있다. 모국과 모국어를 떠나야 했던 작가라서 읽고 쓰기가 남다른 의미를 가졌던 이야기가 여름 오후의 햇살처럼 뜨겁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읽기에 빠졌고 이야기 짓기를 좋아했던 아고타 크리스토프에게 정작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 것은 불행했을 때, 가족들과 헤어져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기숙사에서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침묵이 강요된 학습실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읽기와 쓰기뿐이었다. 밤 10시면 불을 꺼야 하는 기숙사에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읽다가 잠이 들었고, 울면서 잠든 밤들 사이에서 태어난 문장들을 시로 엮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때 이미 작가였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국경을 넘어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살아야 했던 시기에도 그녀는 역시 작가였다. 글을 쓸 수 없었던 시절에 작가는 자신의 몸에 시와 희곡과 소설을 새겼다. 그것들은 언젠가 그녀가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다시 살아나 다른 이 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운명이어서, 그녀의 시와 희곡들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 책의 시제다. 네 살부터 이어지 는 오십여 년의 세월을 이야기하는 동안 내내 현재다. 동생을 놀리다가 혼이 나는 것도 지금이고, 신발을 수선하는 동안 신을 신발이 없어 누워서 지내는 가난도 현재다. 넉 달 된 어린 딸을 안고 헝가리의 국경을 넘고 스위스에 정착해서 프랑스어로 말하고 쓸 수 있을 때까지 의심과 불안과 절망의 시간들은 그녀의 몸속에 차곡차곡 쌓여 시가 되고, 희곡이 되고, 소설이 되었다.

국경을 넘는 순간, 언어도 함께 잃어버린 그녀가 5년 동안 읽고 쓰지 못했단 사실을 떠올리자 이 책의 시제가 현재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에서건 어떤 언어로든지 글을 썼으리라고 확신하는 그녀의 글쓰기에 관한 갈망은 침묵 속에 살던 지난 시간들을 깨운다. 삶의 모든 순간들은 그녀의 언어로 옮겨지고 나서야 비로소 과거가 되어 쉴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웃는다. 나는 그에게 소련인들이 무섭지 않고 만약 내가 슬프다면 그것은 오히려 지금 너무 많이 안 전하기 때문이라고, 직장과 공장, 장보기, 세제, 식사 말고는 달리 생각할 것도, 할 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잠을 자고 내 나라 꿈을 조금 더 오래 꿀 수 있는 일요일을 기 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에게 말하지 못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p.90


내 안에 고여 있는 시간들을 헤아려본다. 소녀로, 새댁으로, 젊은 엄마로 살던 시간을 지나 중년의 사람이 되었다. 종종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렸다고, 정작 하고 싶었던 일에는 손도 대지 못했노라고 아쉬워했으며, 이유를 모른 채 불안하고 막막해서 한숨 쉴 때도 있었다.

아마 그때 내가 슬펐다면 그건 내가 남편과 아이, 장보기와 고지서, 세탁물 접기, 음식 만들기 말고 달리 생각할 것도, 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성능 좋은 가전제품, 조금 더 안락한 침구 같은 것 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어서, 그게 내 세계의 전부인 것처럼 살다가 그만 슬픔에 빠져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내 몸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단어와 문장이 아니라 세제와 화장품과 신발로?


그동안 흘려보내버렸다고 생각했던 나의 시간들이 지금의 시제로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그녀의 몸처럼 내 몸에도 글이 새겨진 부분들이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그걸 찾아서 언어로 바꿔보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 속에 숨어 있던 시간들을, 나는 쓴다. 어느 날의 웃음과 어느 날의 슬픔이 단어로, 문장으로 바뀌는 걸 본다. 모호했던 감정들이 선명해질수록 점점 가벼워진다. 며칠 쓰지 않으면 헛배가 부른 것처럼 답답하다. 한바탕 다다다닥 두드리고 나면 내 몸에서 빠져나간 언어만큼 나는 날씬해진다.


목수국이 피었다. 키가 크고 잎은 갸름하다. 꽃은 작고 귀엽게 피었다가 청초하게 성숙해진다. 목수국 꽃이 만든 그늘 아래 손을 갖다 대면 내 손도 희고 맑게 변할 것 같다. 나는 갑자기 그동안 내가 뭘 못 보고 살았는지 궁금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가 그리운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디로 갈 수 있는지, 누구를 웃게 하고 누구를 울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시간들, 내가 건너가고 있는 시간들을 바라본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과 나를 감싸고 있는 물건들, 내 머리와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갈망을 헤아려본다.


이렇게 뜨겁고 빛나는 여름에 내가 하는 일은 고작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