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쌓인 눈이 스러지고 얼어붙었던 땅이 풀리면 흙빛에 가까운 푸르스름한 은방울꽃 싹들이 올라온다. 기온이 조금씩 높아지면 동그랗게 말린 초록색 잎들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그해에 꽃을 볼 수 있을지는 바로 그때 알 수 있다. 잎이 펴지면서 좁쌀 같은 꽃망울을 단 꽃대도 함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꽃이 피는 시기에는 아침에 마당에 나가는 것이 향기를 깨우는 일이 된다. 잠들었던 향기는 내가 움직일 때마다 달콤하고 서늘하게 깨어난다. 작은 꽃들을 들여다보고, 손가락으로 건드려보고, 행여 방울 소리가 들릴까 귀도 기울이며 향기에 취한다. 이게 무슨 호사인가 생각한다.
은방울꽃이 피기 전에 사실 봄은 이미 와 있다. 이렇게 넉넉할 수 있을까 싶게 푸짐한 봄볕에 감격스럽다가 돌연 싸늘한 아침이 서리와 함께 놀리는 듯 나타나기도 하는 계절, 봄이 숨어버렸나 싶지만 사실 그게 봄이다. 봄은 느리고도 성급하여 드디어 왔구나 싶으면 벌써 달아날 차비를 한다. 예고도 없이 무성한 잎 사이로 홀연히 올라온 앵초와 물망초의 꽃봉오리는 마치 연극은 이제 끝났으니 꽃이나 피우련다고 말하는 듯 무심해서, 나는 문득 고개 숙여 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망설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 있는 그대로 행복한 앵초와 은방울꽃에 관하여, 그리고 그들을 닮고 싶은 자신에 관하여 쓰고 싶어진다.
버지니아 울프는 서른세 살부터 27년간 규칙적으로 일기를 썼다. 1915년 1월 1일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그녀가 자살하기 나흘 전인 1941년 3월 28일에 끝이 난다. 울프는 낱장에 쓴 일기를 손수 묶고 제본해 스물여섯 권의 공책으로 남겼다. 1953년에 남편 레너드 울프가 아내의 일기 가운데 문필 활동에 관련된 부분만을 추려서 단행본으로 출간한 [어느 작가의 일기]를 나는 침대 옆 작은 탁자에 두고 잠들기 전에 아무 곳이나 펼쳐서 몇 페이지씩 읽는다.
책은 670페이지로 상당히 두꺼운데 침대에 누워 읽기에는 다소 무겁고 큰 편이다. 읽다가 잠이 와서 책을 놓친 적도 셀 수 없이 많고, 떨어지는 책에 얼굴을 맞은 것도 여러 번이다. 몇 페이지마다 접혀 있거나 줄이 그어져 있거나 괄호로 묶여 있는 부분이 나온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세상을 등진 사람의 일기 속에서 지금의 나를 만난다.
일전에 찰스턴에서 돌아왔을 때 저녁이 (놀랄 만큼, 그리고 넘쳐나리만큼) 너무 아름다워 내 신경은 곤두섰고, 빨개지고, 감전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순간 그것들을 모두 붙잡아서 간직해둘 수 없다는 것이 원망스러워졌다. 인생을 걸어가는 과정에 보게 되는 갖가지 발전을 파악하려는데서 인생은 한없이 흥미로워진다. 버지니아 울프 [어느 작가의 일기], p131
나 역시 순간을 붙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종종 생각한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분홍빛으로 물든 하늘, 언 땅의 갈라진 틈 사이에서 솟아나는 새싹, 그치지 않는 비에 투명해진 꽃잎, 숲에서 건너온 바람이 마당을 휘돌아 나가면서 남긴 빛의 잔해 등을 모아 그 속에 담긴 음악을 기록하고 싶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것들을 볼 때마다 뭐라도 쓰고 싶지만, 울프처럼 차분하고 냉정하게 글을 써 내려가기는커녕 가슴이 뛰고,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더듬으며 헛발질이나 하기 일쑤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공책, 스마트폰의 메모장, 영수증 뒷면, 수첩의 빈칸에 흘겨 쓴 메모들은 얼마나 더 고이고 익어야 하나의 문장으로 태어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직은 그렇다.
책을 읽다가 자주 멈춘다.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을 만났을 때,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을 때, 내가 꺼내지 못한 감정들이 단어와 문장의 옷을 입고 있는 걸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때마다 망설인다. 페이지를 접을까, 밑줄을 그을까, 수첩에 옮겨둘까, 멈칫하다가 그냥 넘어갈 때도 있고, 사진을 찍을 때도 있고, 또박또박 베껴둘 때도 있다. 항상 나중에 궁금한 건 그냥 넘어간 부분이다. 표시를 해둔 것들 모두를 뒤져봐도 찾는 문장이 없을 때의 열패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게 책 전체를 다시 훑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는 것도 이와 같다. 지나고 나서야 아, 그때 좀 더 꼼꼼하게 할 걸, 내가 양보할 걸, 한 번 더 참을 걸, 정성을 더 들일 걸, 온갖 순간들이 아깝다. 책이야 다시 읽어가면서 찾아보면 되지만 지나간 순간은 다시 살 수 없으니 더 아깝다.
오늘 아침에는 주저하고, 망설이고, 떨기도 했지만 금년은 참 좋은 여름이다. 아름답게 조용하고, 상쾌하며 강력하다. 내년 여름도 이와 같은 좀 더 인간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 친구들과 허물없이 사귀고, 인간생활의 폭과 즐거움을 느낄 것, 아직 하나의 틀을 만들려고 무리하지 말 것, 그리고 유연해진, 일상적인 것들, 대화나 성격 따위의 액체가 내 몸 안에서 내가 그만!이라고 말할 때까지 조용히 무의식 중에 배어들어오게 하자. 버지니아 울프, [어느 작가의 일기], p335
그녀가 쉰 살의 여름에 쓴 일기다. 바로 전에 소설 [파도]를 출간했고, 며칠 전 [일반 독자 2]의 원고를 완성한 작가의 일기가 이토록 평온하고 무심할 수 있을까. "주저하고 망설였지만 아름답게 조용하고 상쾌하며 강력했디"니!
2020년 오월의 마당
2019년의 여름은 울프가 이 일기를 썼던 1932년만큼 아름답다. 나는 지난봄 마당을 향기로 가득 채웠던 은방울꽃에 그랬듯이 갑자기 올라온 상사화의 꽃대나 구상나무의 연둣빛 새순들, 덩굴 아래 떨어진 붉은 토마토와 흐트러진 장미 꽃잎들, 갑작스러운 소나기와 유리창을 흔드는 바람에도 감동한다. 마당의 꽃잎이나 나무 그림자, 줄기를 흔드는 바람 같은 것들에 매혹당할 때마다 그런 마음을 들켜도 되는지 부끄럽다.
아름다움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꿔가며 종일 그곳에 있다. 내가 염려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좋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즐기지 못하고 성급하게 어설픈 언어에 가둬 버릴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생각을 오래 할수록 결론은 하나,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 가슴이 두근거려서야 어떻게 하나의 틀을 만들고, 그것이 자연스럽고 조용하게 배어들기를 바랄 수 있을까 싶다. 무엇인가에 관해 쓰다 보면 놀랍게도 내가 그것에 관해 정말 아는 것이 거의 없음을 알게 된다. 사물과 타인에 관해 공부가 필요한 것처럼 나 자신에 관해서도 공부가 필요함을 깨닫는다.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정확하게 보고, 읽고,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아침마다 매일 만나는 마당의 꽃들에 새삼 놀라고 어쩌면 오늘이 여태 살아온 중 가장 행복한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몸을 떤다. 다가오는 풍경들은 여전히 낯설고 놀라워 내게 오늘은 언제나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