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에 산다는 건 집의 유지와 보수에 관한 긴 리스트를 항상 곁에 두고 있는 것과 같다. 아파트에 살 때 우편함에 들어있던 관리비 고지서의 여러 항목들이 각각의 독립된 고지서로 변화하는 것, 그게 단독주택 살이의 첫 번째 변화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쏟아지고, 몇 걸음만 나가면 분리수거통이 나란히 서 있는 아파트에서 살던 시절에는 너무나 당연해서 관심 밖이던 많은 일들이 번갈아 등장해서 관심과 비용을 요구한다.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모터가 고장 날 수도 있다.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물탱크 청소와 수질 검사도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 지하수를 사용하는 비용은 수도요금이 아니라 전기요금에 포함된다. 정화조 청소를 잊어도 안되고 쓰레기 내놓는 날도 잘 기억해야 한다. 비가 올 때마다 집 옆을 흐르는 배수로를 살피고 사다리를 기어올라가 무성해진 나뭇가지들을 잘라야 한다. 여름날 저녁 상추 한 줌을 반겼던 그 손으로 칠이 벗겨져 얼룩덜룩한 데크를 칠하느라 며칠을 보내버리기도 한다.집은 낡아가고 마당은 해마다 좁아지며 우리는 늙는다.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한다. 계절은 돌고 꽃은 피었다가 진다. 조금씩 익숙해지고 조금씩 포기하고 그만큼 편안해진다. 계절은 내 집 마당에서 번갈아 다가온다. 꽃과 나비, 풀과 시든 잎들, 열매와 잡초가 벌이는 작은 향연 속에서 나는 매일 주인공이다. 보일러만 고치면 아무 문제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