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만에 혼자 있는 시간인가? 아침 8시 반에 집에 혼자 남았다. 남편과 아이는 12시가 넘으면 돌아올 것이다. 점심은 적당한 것으로 사 온다고 했으니 딱히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켰다. 책상 앞에 앉아서 책상 서랍을 여닫고 책상 위에 흩어진 메모지와 영수증과 팸플릿을 뒤적였다. 책장 앞에 서서 나란한 책등을 어루만지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미색 커튼 너머로 약한 햇살이 비쳐 들었다.
혼자 있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구나! '산뜻하고 청량한 냉기'*는 여름에만 반가운 게 아니었다. 순식간에 몸무게가 5kg 정도 빠진 사람처럼 가볍게 주방과 거실을, 아래층과 위층을 걸어 다니다가 슬리퍼를 꿰고 밖으로 나갔다. 화분 위에 앉아서 볕을 쪼이던 고양이들이 기지개를 켜고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달아나는 녀석도, 다가오는 녀석도, 그 자리에 앉아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녀석도 있다. 나는 블루베리 가지를 살펴보다가 그중 작은 것 하나를 부러뜨린다. 아직 1월인데, 물이 오르려면 멀었는데, 혹시 초록색이 보일까 설렌다. 그늘에는 눈이 녹지 않았다. 불어 올라오는 바람이 부드러우면서도 차다. 심호흡을 하면서도 마음이 바쁘다. 뭔가 할 일이 있을 텐데. 아무도 없는 오늘 같은 날, 혼자 있어 더 하기 좋은 뭔가가 있을 텐데 그게 뭘까 생각하다가 웃음이 터졌다.
그때와 똑같네. 혼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기가 소원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다가 호캉스를 갔던 그때.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수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도 없었던 2박 3일 동안의 외출. 체크인을 하자마자 고민에 빠졌던 그때가 생각났다. 밖에 나가자니 호텔 안에서의 뒹굴거림이 아깝고 머물자니 밖의 자유로운 공기가 그리워서 이도 저도 못하고 동동거리다가 돌아왔던 호캉스였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잠을 이틀 동안 계속 설친 탓이었다. 첫날은 아무 일도 없는데 혼자 호텔에서 잠을 잔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였고 둘째 날은 다음날이면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게 아쉬워서였다. 그때는 그게 참 바보 같아서 비용도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돌아보니 나름 재미있었던 이벤트였네!
11시가 조금 지나자 떠난다는 연락이 왔다.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는 동안 주전자의 물은 혼자 끓다가 졸아들었고, 식구들은 정확히 12시 5분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