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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름끈 유감

by 라문숙



"어! 이상하다."


새로 읽기 시작한 책의 가름끈을 찾아서 읽기를 멈춘 곳에 끼우는 일은 일종의 의식이다. 읽기와 읽기가 가져온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멈춘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표식이다. 그런데 이런 건 처음 보았다! 가름끈이 페이지 끝에 닿지도 않는다. 이래서는 가름끈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책 아래쪽에서 달랑거리는 가름끈을 잡고 책을 여는 보통의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가름끈을 사용할 때마다 마치 처음 그 책을 읽기 시작할 때처럼 가름끈이 시작하는 곳을 찾아서 책장을 열어야 한다. 가름끈의 도움을 받아서 책을 여는 평범하고 사소한 일이 불가능해져버린 것이다. 가름끈이 숨어있을 만한 곳을 찾아 책장을 휘리릭 넘기거나 가름끈이 붙어있는 곳의 책장 사이에 손톱을 넣어 페이지를 열어야 한다. 새 책의 예리한 종이가 손톱 사이로 끼어들어 피를 흘릴 수도 있다. 가름끈을 찾아 끼워 본들 책을 덮고 나면 책장 사이에 숨겨진 그걸 찾을 도리도 없다.



어쩌면 이것은 출판사의 의도였을까. 혹시 저자가 독자들은 볼 수 없는 메모를 출판사에 전달했을지도 모른다. 비밀스럽게 덧붙여진 또 하나의 이야기, 그러니까 가름끈에 관한 짧은 장을 보이지 않는 부록처럼 붙여서 책을 만든 것일까? 종이 위에 납작하게 엎드린 활자 대신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만큼 짧은 가름끈을 등장시켜 독자로 하여금 헛된 시도를 되풀이하다가 기어이 분통을 터뜨리고 또 그중 몇몇으로 하여금 이렇게 긴 넋두리를 늘어놓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가름끈의 역할은 간단하다. 읽다가 멈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할 때 내가 멈춘 곳과 시작할 곳을 알려주는 게 전부다. 책 밑에 가련하게 떨어져 나풀거리는 가름끈을 거슬러 책을 열면 거기에 내가 멈춘 곳, 내가 시작해야 할 문장이 있다. 억지도 없고 오해도 없는 명쾌한 가름끈의 본성처럼 길이를 맞추지 못한 실수도 단순하되 치명적이다.


새 책의 가름끈을 처음 찾아내는 순간을 좋아한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가름끈은 비틀리거나 말려서 누운 채로 페이지 사이에서 납작하다. 오랫동안 두꺼운 책의 낱장들이 서로 몸을 맞대고 있다가 서툰 손가락이 머뭇거리며 다가와 그들을 서로에게서 떨어지게 하고 이윽고 책장을 넘길 때를 기억하는지. 붙어있던 책장들이 넘겨질 때마다 들려오는 작은 비명, 그러다가 수분이 빠진 마른 잎처럼 숨어있던 가름끈을 발견하는 때, 고개를 들고 참았던 숨을 내뱉을 때. 한 권의 책이 인생이라면 가름끈이란 내가 쉴 때를 알려주는 종소리 같은 것이다. 때로 앞으로 돌아가고 혹은 방향을 틀고 마침내 주저앉아 이끼 낀 벽이나 나무 등걸에 등을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 보라는 신호의 역할은 모든 가름끈에게 단 한 번만 허용되는 것이다. 읽는 이에게 발견되고 나면 그때부터 가름끈은 본연의 '일단 멈춤' 역할에 만족한다. 그러나 길이가 짧은 가름끈이라면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니 쓸모없음의 한 예로 남을 밖에. 나의 두서없는 중얼거림이 저자의 숨겨진 의도였다면 그것 또한 역할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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