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쳤다. 블루베리 나뭇가지를 들춰가며 잎 사이로 숨어있는 블루베리를 땄다. 몸을 오른쪽으로 돌릴 때마다 뭔가가 있었다. 보이는 듯했다가 사라지던 그게 혹시 벌레는 아닐까? 몸이 먼저 반응했다. 화들짝 나무에서 떨어져서 양팔을 휘저으며 한바탕 옷을 털었다. 그리고 찬찬히 살폈다. 그건 옷에 붙어있던 세탁표시 꼬리표였다. 옷을 뒤집어 입은 거였다. 아침에 뭘 입을까 옷을 벗었다 입었다 반복하다가 아마 뒤집어진 것을 그대로 입은 모양이었다. 남편은 저쪽에서 라즈베리 줄기를 자르고 있었다. 자른 나뭇가지들을 치우느라 내 옆을 오락가락 지나다녔다. 남편이 지나갈 때마다 나는 몸을 돌리거나 손을 올려 꼬리표를 가렸다. 옷을 뒤집어 입은 걸 들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옷을 제대로 입으려고 들어가기도 귀찮았다. 그 옷은 마침 마감이 잘 되어 있던 옷이라 안과 밖의 차이는 세탁 표시 꼬리표가 유일했다. 사실 그것만 없으면 뒤집어 입어도 무방할 정도였다. 꼬리표만 보이지 않으면 옷을 뒤집어 입은 건 나만 아는 비밀이 될 터였다. 옷을 제대로 입는 일 정도야 블루베리를 딴 후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날 저녁 설거지 후에 방에 들어와서 그때까지도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하루 종일 옷을 뒤집어 입고 있던 걸 정말 아무도 몰랐을까? 아니면 모른 척을 해주었을까? 30 년쯤 전에 아이를 잃고 내 앞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가 블라우스를 뒤집어 입은 걸 못 본 척했던 나처럼? 헤어진 솔기와 너덜거리는 꼬리표를 애써 외면하면서 묻고 대답하느라 애를 썼던 나처럼 말이다. 옷을 뒤집어 입은 사람을 가끔 본다. 뒤집어 입은 옷은 싸움터의 하얀 깃발 같아서 그 옷을 입은 사람을 나는 무엇으로든 가려주고 싶었는데 그 방법은 항상 ‘모른 척하기’였다. 왜 넌지시 알려주지 않았을까? 그로 하여금 가능한 한 빨리 실수를 만회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서로 난처했을지도 모를 시간을 - 한 사람은 민망하고 한 사람은 부끄러웠을 - 피하기 위해서였을까? 이십 대 초반의 서툰 나를 떠올려본다. 나는 그때보다 나아졌을까?
그나저나 옷을 뒤집어 입은 걸 알고서도 바로잡지 않는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일까? 어떤 마음이면 옷을 뒤집어 입은 걸 알고서도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