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찾고 있어
에밀리 디킨슨, 클라리시 리스팩토르
노트북을 펴면 양 쪽에 한 뼘 남짓한 공간만 남는 작은 책상, 그 앞에 앉아있다. 어른이 되고 난 후 함께 했던 책상 중 가장 작다. 불편할 때도 있지만 책상이 크냐 작으냐 같은 문제는 더 이상 내 관심사가 아니다. 느닷없이 책상 이야기를 꺼낸 건 아마도 다소 고단한 하루 끝에 책상 앞에 앉아서 반쯤 잠든 상태로 2024년 8월 16일(오늘) 발행한 TLS를 훑어보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이다. 에밀리 디킨슨이 24살 때 고향집 햄스테드로 돌아오면서 친구 엘리자베스 홀랜드에게 쓴 편지에 "나는 등불을 들고 나를 찾고 있어."라고 썼다는 것이다.
책상과 에밀리 디킨슨이 어떤 관련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을 위해 구차한 변명을 하자면 나는 작은 방, 그러니까 일인용 침대와 일인용 의자, 그 의자보다 크지 않은 책상이 나란히 놓인 방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 요즘처럼 더운 날에는 이 방에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 밤이나 되어야 들어와 앉는다는 것, 특별한 일이 없어도 저녁이 되면 지치는 사람이기에 책상이 제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는 것, 그럼에도 뭔가를 읽고 쓰려는 시늉은 한다는 것, 그런데 오늘은 하필 에밀리 디킨슨이었고 게다가 "나는 나를 찾고 있어."라니! 작은 책상 앞에라도 앉아서 졸고 있지 않았다면 이 문장이 그렇게 극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는 못했을 테니 고마운 일이 아니겠느냐는, 작아도 본분을 다하는 책상이라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다.
사실은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는데 그때는 좀 무서웠다. 그 이야기는 "내가 나였다면"으로 시작한다. 내가 나였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가 나였다면 그동안 해왔던 거짓말들이 들통날 테고, 내가 나였다면 날 아는 이들이 내게 아는 체도 하지 않을 테고(왜냐하면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나였다면 어쩌면 미쳤을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이 "내가 나였다면"은 '우리가 사는 데 가장 위험한' 말인 듯하다는 이야기다. 클라리시 리스팩토르의 [세상의 발견]에 나오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조금 무섭긴 했으나 놀라지는 않았다.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연기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조금 무서웠던 건 설사 모두가 그렇다 해도 그 말을 이렇게 또렷한 목소리로 정면을 향해 말하는 이를 처음 만났기 때문이었다. 내 안에서 팽팽하게 당겨졌던 고무줄 하나가 탕! 하고 끊어진 기분이 들었다. 이제 이런 건 안 해도 돼,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가뿐해졌다. 얼마 전에 얘기했던, 시든 꽃을 자르고 튀어 오르던 나뭇가지가 된 듯,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나무처럼, [세월]을 끝냈을 때의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