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공사를 했다. 거실 복도 천장에 액자 같은 것이 붙어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전기배선 점검구란다. 보이지 않던 전선들이 그곳에 모여 있다고 했다. 차단기와 콘센트, 스위치를 사용할 줄만 알았지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디를 통하는지엔 관심도 없었다. 점검구 밖으로 나와 있는 전선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 색의 전선들, 굵고 가늘고, 길고 짧고, 아무리 들여다봐야 나로서는 그저 하나의 선으로 보일밖에. 그러다가 흠칫, 놀랐다. 병원 침대 머리맡에 연결되어 있던 그 선들. 아, 집이 아팠구나.
설거지를 할 때마다 전기가 통하는 바람에 놀란 게 여러 번이다. 주방의 가전과 세탁실의 가전들을 동시에 사용하면 차단기가 내려간다. 언제부턴가 주차장 문도 제 맘대로다. 조명 스위치가 제 구실을 못해 아예 전기를 끊어놓은 곳도 있다. 어둡고 불편하고 불안해하기만 했지 집이 아플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 다 신호였다. 아팠던 거다. 집도.
아플 때 우리는 멈춘다. 소통도 외출도 미룬다. 요리와 세탁에서 손을 뗀다. 예의 같은 건 알지 못한다는 듯이 제멋대로 군다. 시계를 보지 않고 아무 때나 자고 밤새 깨어있기도 한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 '탈영병이 된다. 그들이 전쟁터로 행진해 가는 동안 ~우리는 잔디밭 위 낙엽과 뒤섞여, 무책임하고 무심하게, 아마도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하늘을 쳐다볼 수 있게 된다.'* 누구도 아픈 이에게는 책임을 지라거나 논리적인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니 조금은 무모해도 좋으리라. 잔디밭 위에 누워 물까치들의 움직임을 눈에 담고 언제까지고 하늘의 구름을 따라가는 일도 가끔은 괜찮지 않을까?
전원 차단 스위치를 손 닿기 쉬운 곳에 달았다. 주방과 세탁실의 전기를 분리해서 차단기를 추가했다. 이제 주차장 문도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 집안이 밝아지니 새집 같다. 더 이상 불편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내일 병원만 다녀오면.
*버지니아 울프, <병에 대하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