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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Sep 03. 2024

김밥과 버베나


  몇 년 전 버베나를 사러 갔던 화원에서 직원이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버베나는 날이 추워지면 금방 힘들어하니 추워지기 전에 집안으로 들여놔야 해요."
봄부터 가을까지 이파리를 건드릴 때마다 싱그러운 레몬 향기를 나눠줬던 버베나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작고 하얀 꽃이 피었다. 깨알같이 작은 꽃은 꽃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볼품이 없었지만 그래도 대견했다.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 집안으로 들여다 놓고 애지중지했으나 그 겨울을 나지 못하고 죽어버렸는데 두어 해 지나 다시 들여와 화분에 심었다. 화분에서 살지만 어엿한 나무다. 옆에 앉을 때마다 알싸한 향기에 정신이 번쩍 들어 고마웠는데 어느새 가을 준비를 하게 생겼다.


로벨리아와 버베나, 천일홍과 아보카도가 있는 풍경


  돌이켜보니 이사 와서 첫해와 이듬해는 버베나처럼 겨울을 제대로 나지 못한 식물들이 많았다. 긴 겨울을 애써 버티다가 봄에 죽어버리는 경우도 흔했다. 정말 어처구니없었던 건 볕이 따뜻한 봄날에 내놓은 식물들의 잎이 햇볕에 타버리는 거였다. 도대체 어쩌라고 같은 말이 나도 모르게 마구 나오던 시절이었다. 잎이 하얗게 타버린 아이들은 언 땅에서 새순이 나오듯 느릿느릿 작은 잎들을 꼬물꼬물 내며 자라서 여름을 맞이했다. 무성하게 자라 볼만해지면 금세 가을이 오곤 해서 마치 계절과 술래잡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달까, 식물들은 짧은 여름을 위해 오래 잠들었다가 맹렬하게 자라나 꽃 피고 시들었다. 나 역시 조금 느긋하면 좋으련만 요 며칠 햇볕 속에 가을이 묻어있는 걸 눈치채고 보니 마음이 급해진다. 곧 누가 추운지 살피며 화분을 안으로 옮길까 말까 저울질하느라 하루가 짧을 것이다.


  김밥이 먹고 싶어 시장에 갔다. 단무지와 당근을 바구니에 넣고 시금치를 찾았다. 한 단에 만삼천 원, 누가 볼세라 얌전히 내려놓고 그 옆에 놓인 삼천 원짜리 부추 한 단을 집어 들었다. 같은 초록에 향은 더 좋으니까. 묻는 이도 없는데 변명하듯 중얼거린다. 김밥 몇 줄 마는데 걸리는 게 왜 그렇게 많던지. 설탕 병은 비어있고, 있는 줄 알았던 햄도 없었으며, 명란은 찌다가 태워버렸다. 더운 여름을 나느라 힘들었는지 김밥김도 색이 약간 변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사는 게 생각대로만 되면 어려운 일도 하나도 없겠지,라며 멈추지 않았다.  


  마당이나 김밥만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여태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그러리라는 보장도 없다. 예전에는 옳던 일이 이제 그른 일이 되기도 하고, 그건 아니야라고 말하기에도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나는 언제나 진심이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마음을 다하는 게 최선이라는 말만 겨우 할 수 있는 나로서는 부족하지만 김밥을 쌀 수밖에. 나란히 누워있는 김밥들이 예쁘다. 꼭 생각했던 대로가 아니라도 괜찮지 않으냐고 묻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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