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를 든 남자가 내 옆에 놓인 테이블 맞은편에서 의자를 끌어내고 앉으며 몸은 좀 어떠냐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남자는 이미 접시를 앞에 놓고 앉아있었다.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뭐라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먼저 말을 꺼냈던 남자가 괜찮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오이와 연어를 입에 넣고 씹으면서도 앞에 앉은 남자의 표정을 살폈다. 잠은 좀 잤느냐고, 오늘은 괜찮을 거라고, 좀 든든히 먹으라고 연신 말을 건넸지만 맞은편 남자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다. 마지못해 괜찮다고 하는 말도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먼저 말을 꺼낸 남자는 맞은편 남자의 입에서 조각조각 나온 말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온몸으로 받아 안는 것처럼 보였다. 걱정과 불안, 안타까움이 뒤섞인 목소리에 어떤 사정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인 나까지 마음이 울렁거렸다.
평소 마주치는 사람들도 잘 보지 않는 편이고 곁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도 귀에 담지 않는 게 보통인데 그날은 달랐다. 도쿄의 한 호텔에서였다. 낯선 언어의 숲에서 우리말이라 그랬을까. 낮은 음조의 조용한 문장들이 귀에 콕콕 박혔다. 그들의 대화 속에 나를 위한 자리가 있을 리 없는데 어쩌자고 낯선 목소리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코까지 매웠던 것일까. 고개를 외로 꼬고 듣지 않으려 애를 쓰다가 문득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스가 아쓰코의 산문을 읽다가 떠오른 일이다. 말이 뭐라고, 웃고 울게 하는 걸까. 책에는 길을 걷다가 누군가를 맞닥뜨렸을 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몸을 숨길만한 건물 입구나 가게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 들어간 가게가 치즈가게여서 생각지도 못한 치즈를 사야 하는 시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겉치레 인사만으로 끝낼 수 없지만 마음에 없는 무의미한 말을 주고받는 일은 피하고 싶으니 사라져 버리기로 하는 사람들. 몇 년 전의 어느 아침에 내가 목격한 남자들과 오늘 낮에 읽은 이야기 속 시인들은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 지난 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시를 쓰던 사람들이 수십 년이 지나 동아시아의 반도에서 다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다시 도쿄의 아침으로 돌아가면 '오늘은 괜찮을 거라는', 길지 않은 말의 힘이 꽤 오래가더라는 이야기. 벌써 몇 년 전의 일인데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